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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ed: 13+ · Short Story · History · #2319670
In 1428, Jean of Domremy meets one company captain. How her and his destiny changes?
* 이 이야기의 일부 설정은 작가가 추가하거나 바꾼 것이 있습니다.
* 여기서 나오는 일부 인명, 지명, 회사명등은 대부분 가공된 것으로 실제 인명, 지명과 전혀 관계없습니다.
* 이 전체 스토리의 저작권은 작자에게 있습니다.
* 이 작품은 CCL 2.0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규약을 따르고 있습니다.

※ TheTempes님의 "용병대장과 성녀"의 개인적인 리메이크입니다.



그녀(쟌 다르크)는 신앙과 의지가 성취할 수 있는 기적의 가장 경이적인 실례였다.
-프랑스사(Histoire de la France, 1947), 앙드레 모로아(Andre Maurois, 1885.07.26 - 1967.10.09).


백년전쟁의 후기, 1428년 어느 날 새벽- 아침, 프랑스의 동레미(Domremy) 마을.
프랑스의 남서쪽, 보주(Vosges) 산맥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에도 백년전쟁의 여파가 미쳐있었다.
그리고 여기의 어느 작은 성당에서 햇빛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색색으로 비치는 가운데, 전형적인 양치기 복장을 한 키가 크고 긴 흑발을 한 어린 소녀가 성당 제단에 높게 걸린 예수와 성모 마리아 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깊게 기도하고있었다.
1425년, 불과 13세의 그녀에게 성 미카엘, 성녀 마르가리타, 성녀 카타리나의 모습과 함께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랑스를 구하라"는 목소리에 처음에는 당황해서 거절했으나 그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올해인 1428년, 마침내 16세에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順命)할 것을 결심했다.
길고 긴 기도를 마친 그녀가 성당을 나오자 마을이 북적였는데, 분주하게 오가는 마을 사람들의 말들을 자세히 들어보니 이랬다.

"C'est une entreprise commerciale vient pour longtemps!(오랫만에 상단이 왔어!)"
"...mais c'est petit.(하지만 작네.)"
"Ne vous souciez pas des grands ou des petits. Nous pouvons acheter les necessites quotidiennes.(크고 작은 건 상관안해. 생필품을 살 수 있을 거야.)"
"Ils ont une compagnie libre.(용병단도 있어.)"
"Une compagnie libre?(용병단?)"
"Il y a aussi petit.(용병단도 작아.)"
"Ils ont l'embleme du tonnerre.(번개 엠블렘이 있어.)"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0화. Pliot: 만남

작은 상단(商團)과 마치 이들을 보호하는 듯이 보이는 용병단은 각자 동레미 마을 안쪽 광장과 바깥 평야에서 뫼즈(Meuse) 강을 끼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5- 60대로 보이는 동레미 마을 촌장이 용병단의 주둔지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젊은 대장에게 물었다.
"Ah... ...Monsieur, Voudriez-vous nous sauver de l'armee de Bourgogne?(저… …나리. 혹시 부르고뉴 군을 막아 주실 수 있는지요?)"
"Bien sur, nous pouvons vous proteger mais que nous donnerez-vous?(물론, 막아줄 수 있지만 뭘 내놓을 거지?)"
"Ah... C'est...(아… 그건……)"
"Nous savons que nous ne pouvons pas sortir de ce petit village de montagne.(이 산골에서 뜯어낼 게 없는 거 잘 알아.)"

내 말에 촌장은 살짝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
이런 산골 깡촌에서 약탈해봐야 나올 게 있나. 이미지도 떨어질텐데. 게다가 잉글랜드와 부르고뉴 파 군대들이 주변을 신나게 약탈해댄다지.

이미 여러 번 책으로 읽었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했지만 겪어보니 예상 이상이었다.
백년전쟁의 여파로 이 마을 사람들도 양 파벌로 나뉘어 다투고, 심하면 이웃 마을로 피난가기로 했다지. 그런 경우를 러시아와 북유럽을 횡단해 프랑스에 진입하면서 많이 볼 수 있었다.
만약 부르고뉴 파 군대가 여기에 온다면 우리의 병력으로 최소한 피난시켜줄 수나 있으려나?
게다가 악랄한 놈들은 피난민 짐까지 약탈한다는데... 우리도 여러 번 포로가 된 기사의 몸값으로 벌어봤지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알다시피 백년전쟁은 플랑드르의 상인들이 부추긴 것도 있지만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여러가지 이유로 프랑스를 욕심내지않았다면 일어나지않았을 거다.
이 시점이 되면 프랑스는 양쪽으로 분열되었는데, 부르고뉴 파는 백년전쟁 후반기에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Philippe le Bon, 1396.7.31 - 1467.6.15)을 중심으로 영국의 후원을 받으며 아르마냐크 파와 대립했고, 아르마나크 파는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에서 부르고뉴파에 대립하고 아르마냐크 백작이 수령이 되어 황태자 샤를을 지지해서 황태자파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프랑스인이 영국인의 지배를 싫어한다해도 이미 베드포드 공작 존은 오를레앙을 포위하고있었고, 오를레앙 공작 샤를은 영국의 포로가 된데다 아르마냐크 파에게는 오를레앙을 탈환할 병력이 없었다.

"Nous resterons quelques jours. ... et pensez-y. Si vous nous donnez un bon prix, vous protegerez vous et votre village.(며칠동안 머물테니... 잘 생각해보도록. 적당한 댓가를 주면 당신과 마을을 보호해주지.)"
약간의 협박이 담긴 내 말에 촌장은 얼굴이 매우 창백해져서 허겁지겁 주둔지를 나갔고, 그걸 처음부터 지켜본 여성 부관이 약간 찡그린 표정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Je l'ai regarde pour la premiere fois, mais cette fois-ci, j'avais l'air un peu dur.(처음부터 지켜봤지만 이번에는 조금 심해보이네요.)"
"Je sais mais ca ne joue pas comme tu le savais.(알고있지만 알다시피 이건 장난이 아니야.)"
"Je sais cela.(알고있어요.)"
"La bonne chose est que quelqu'un qui cherche ce village puisse en deplacer un autre?(좋은 거라면 이 마을을 노리는 누군가가 이동할 가능성 정도일까?)"
"Si tout va bien, ce sera bon pour ce village.(일이 제대로 되면, 마을 사람들에게도 좋겠죠.)"
"Mais quel est le nom de ce village?(어쨌거나 이 마을 이름이 뭐지?)"
"C'est Domremy.(동레미입니다.)"

...

"Quoi!? Une compagnie libre?(뭐시라!? 용병?)"
"Droite. Une entreprise gratuite etait stationnee autour Domremy?(네, 용병단 하나가 동레미 주변에 죽치고 있다는데요?)"
"Ce village soutient le jeune...(동레미라면 어린 놈을 지지하는 마을인데…)" 고민하던 귀족은 간신히 결심을 한 듯 명령했다.
"C'est vrai que s'ils sont l'armee croissante d'Enermy, arretez ca. Preparez-vous a vous battre!(만약 저들이 적의 증원 병력이라면 막는게 좋아. 전투 준비를 하도록!)"

정찰병의 말에 의하면 규모는 확인이 안되었지만 적어도 수백명 수준의 용병단이 동레미 마을 주변에 주둔해있는 것은 알았다.
잘 무장된 보병에 기병도 있는 것 같고. 그 수준이라면 소규모 전투가 가능하다. 그런 놈들이 영국 놈들에게 떨어지면 그렇지않아도 길어진 전쟁이 더 길어진다.
아무래도 상황을 모르는 용병대장이 온 모양인데, 물러나게 해주면 되겠지. 아니면 고용하던가.

...

"..."
쟌에게 용병대의 주둔지를 찾는 건 쉬웠다.
상단이 동레미 마을에서 장사하는 동안, 동레미 마을 바깥 평지에서 이들 용병단은 뫼즈 강을 옆에 두고 숲의 나무를 베어 주둔지를 건설하고있었는데, 그 규모는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하고있을 때, 용병단의 병사 하나가 자신을 발견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고, 이에 쟌은 내심 덜컥 겁이 나면서도 병사에게 자신의 용건을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병사는 놀란 표정을 살짝 지었지만, 곧 침착하게 쟌을 데리고 용병단의 수뇌부로 데리고갔다.

"Excusez-moi, monsieur le chef. J'ai emmene cette jeune femme qui cherche Monsieur le chef!(실례합니다, 대장님. 이 아가씨가 대장님을 찾는다기에 데려왔습니다!)"
수뇌부가 있는 천막 입구에서 쟌을 데리고 온 병사가 절도있게 대답했고, 이에 수뇌부 전원이 그 병사와 쟌을 주시했는데 마침 회의가 끝난 모양이라 부관과 대장으로 보이는 남녀가 있었다. 그리고 부관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병사에게 말했다.

"Nous ne savons pas ce qui se passe mais ecoutons attentivement son histoire. Est-ce que c'est bon, L?(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할까. 괜찮겠죠, L?)"

elle? aile(날개)?
쟌이 이 용병대의 대장 이름과 의외로 젊은 인상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사이, 부관의 말에 용병대 대장은 고개를 끄덕여서 병사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했고, 천막에는 쟌만 남게되었다. 그리고 용병대 대장이 이번에는 엄한 표정과 어조가 되어 쟌에게 물었다.

"Quel est ton nom?(네 이름은?)"
"Jean... Tout le monde m'appelle Jean.(쟌.... 쟌이라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댄 쟌을 보고 용병대 대장의 얼굴에서 매우 놀란 표정이 되었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용병대 대장의 심문은 계속되었다.
"Que fais-tu ici?(여기서 뭘하고있었지?)"
"Parce que c'est une chose importante.(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Chose importante....(중요한 일이라...)" 여성 부관의 목소리.
"C'etait de la recommandation des anges.(천사님들의 명령이었으니까요.)"
"Ah... ange... attendez, Quel age avez-vous?(아... 천사인가... 잠깐, 너 몇 살이지?)"
"....Pourquoi me poser des questions a ce sujet?(…왜 그건 물어보시는 거죠?)"
그래, 경계할만 하지. 아마 여기보다 보쿨뢰르(Vaucouleurs) 지방의 영주 로베르 드 보드리쿠르(Robert de Baudricourt)에게 먼저 갔어야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1428년의 동레미에 있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아가씨의 나이는 상당히 중요하단 말이다.

"Vous avez dit que vous aviez une chose importante. Cependant, il est general de demander votre nom et votre age.(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지. 어쨌든 네 이름과 나이를 알고싶은데 일반적인 일이야.)"
"….six ...seize... peut-etre...(...열 …여섯 살입니다…. 아마도요…)"
"Entendu des voix d'ange a la premiere fois?(천사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건?)"
"Il y a quelques annees... peut-etre 2 ou 3 ans... Toujours pareil, "Sauver la France"...(몇년 전부터에요... 아마 2, 3년 전... “프랑스를 구원하라……고…….)"
"Jusqu'a maintenant?(지금까지?)"
"....Oui. J'espere que je dois aller a Reims.(…예. 반드시 랭스로 가길 원합니다.)"
랭스라... 충분히 납득이 되면서도 되지않는다.
그리고 쟌의 이 말에 복잡한 표정이 된 용병대 대장을 심각한 표정이 된 여성 부관이 대신 물었다.

"Alors vous allez prendre une epee comme commande des anges?(그래서 그 천사들이 시킨 대로 검을 들 생각이야?)"
"Peut etre que.... je le ferais...(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같은 카톨릭 국가 소속인 그녀가 봐도 어이없어할 대답이었겠지. 그리고 이어진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Si vous me demandez mon avis, s'opposer.(내게 의견을 묻는다면, 난 반대다.)"
"Eh..."
"Avez-vous tue des gens? La guerre ne peut rendre personne grand. La guerre est une chose idoit. Avez-vous vu une vraie guerre?(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 전쟁은 위대하게 만들지않아. 바보짓이야. 진짜 전쟁을 본 적이 있니?)"
"Mais... Dieu...(하지만… 신神께서….)"
"Des choses douces que des gens inexperimentes. Vous ne savez pas comment la guerre est horrible. La vraie guerre est l'enfer. Ange? Est-ce que demon porte le tissu d'Angel?(겪어보지못한 놈들에게나 달콤하지. 넌 전쟁의 끔찍함에 대해서 몰라. 전쟁은 지옥이야. 천사? 웃기지 마. 천사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악마가 아니라?)"
이 시대의 가치관은 22세기인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는 건 알지만, 말리고싶었다.
이전의 내 경우도 있어서 이 아가씨가 얼마나 상처받을지 짐작이 가니까.
지옥같은 전장에서도 죽은 적군 병사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그 병사의 눈을 감겨줬다는 일화를 비롯해서, 전쟁의 참상에 슬퍼했다는 것은 22세기에 심지어 머나먼 한국에까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깃발로만 싸우고 검은 들지않았다던데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만 당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근현대, 20세기, 21세기, 22세기까지 후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민족주의를 결집시키려는 목적으로 철저하게 이용당했으니까.
아, 대중매체도 있군. 특히 일본 타입문의 룰러 쟌은 여러모로 대단했지.

"...et nous ne soutenons ni la Bourgogne ni l'Armagnac.(...그리고 우리는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 둘 다 지지하지않아.)"
이 아가씨를 동정하는 마음을 숨긴 채 말하는 거였지만, 역시나 쉽게 받아들이지못하는 듯 했다.
그래서 못박는 듯이 우리의 지침을 이야기하자 쟌은 완전히 놀란 표정이 되었고, 항변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마을이 소란스러워졌고, 우리 천막을 향해 다른 병사가 뛰어들어왔다.

"Qu'est-ce que cela se passe?(무슨 일이지?)" 거의 동시에 대장과 여성 부관이 달려온 병사에게 물었다.
"Une armee sous les armes s'approche de nous!(무장한 병력이 접근 중입니다!)"
"Combien?(규모는?)"
"Je n'ai pas confirme mais ressemblait a 2 fois plus que nous.(확인은 안되었지만 본대의 2배 이상입니다.)"
"Bourgogne ou Armagnac?(부르고뉴 군인가 아니면 아르마냐크?)"
"Parce que c'est longue distance. n'a pas verifie. Pardon!(거리가 멀어서 미처 확인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Urgence! Dites aux entreprises commerciales et evacuez les villageois vers un endroit sur! Tout sous les bras!(비상이다! 상단에게 알려서 마을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켜! 전원 무장!)"
"Deja fait, Monsieur!(이미 하고있습니다. 대장님!)"
"Bien.(좋아)"
급박하게 돌아가는 병사와 용병대 대장의 대화를 쟌이 놀란 표정으로 보고있는 중에, 용병대 대장은 여성 부관과 함께 갑옷을 입으러 천막을 나가기 전에 쟌에게 한마디 했다.

"Jean, Regarde ce qu'est la vraie guerre. C'est tres different de la chasse aux animaux. (쟌, 진짜 전쟁이 어떤 건지 지켜봐. 동물 사냥과는 매우 다를테니까.)"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1화. C'est la guerre...(이것이 전쟁이다...)

준비해둔 중갑옷으로 갈아입고 무장을 갖추고 나오자 마침 낮이기 때문에 서둘러 진형을 배치할 수 있었다.
"대장님, 공격허가를!"
"좋아. 놈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사정거리에 들어올 때 공격을 개시한다.
2열 종대, 정석대로 먼저 방패병 전개, 석궁병은 뒤로."
“방패병, 창병 앞으로! 석궁병은 뒤에 붙어!”
대장의 명령에 따라 이들은 순차적으로 진형을 짰고, 방패병들이 창병과 궁병을 보호하게 되었다. 이어서 궁병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고, 물론 이쪽을 항해 달려오는 상대도 화살 몇 발을 맞더니 급히 방패병이 전진하고 궁병이 화살을 날렸다.

"놈들에게 제노바 석궁병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팍 소리와 함께 방패에 화살이 들이박혔다.
나무에 가죽을 씌우고 철로 보강한 방패는 뚫리지 않았지만, 화살의 충격이 뒤쪽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저들의 화망이 예상보다 조밀했지만, 어차피 미래에서도 사격전 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많지않지. 하물며 중세에서는. 그리고 우리 궁병 대다수는 영국식 장궁병이란 말이다.

"가까이 옵니다!"
"석궁병, 후퇴. 기병이 오면 장창병이 쓰러뜨린다. 총수들과 화포는 마지막까지 아끼고싶군."
대장의 말에 여성 부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주둔지 앞에 말을 막는 목책을 설치했지만, 아무래도 정식 설치 전의 응급설치인지라 금방 돌파될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적 기병은 목책에서 조금 고전했지만, 돌파해 장창병의 사정거리로 돌입했다.
잠시 뒤 중앙 대열에서 말들의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터져나오며 무모한 돌격의 결과를 담담하게 보여주고있었다.

"항상 그렇지만 기사들은 생포할 것. 값이 많이 나간다."
"걱정마십시오." 여성 부관의 지시에 부관들과 부하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것을 본 대장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
"기사들을 생포하면 진열을 凹자로 넓게 편다. 조총병, 양 날개에서 2열로 준비. 날개 끝은 조총병들을 엄호한다. 포병은 후위에 전개하지만 아직 대기로."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용병단의 주둔지로 돌격하던 보병과 기병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하자 상대 쪽에서는 이게 함정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겉보기에 상대할만한 용병대로 보였지만, 오히려 잡혀먹힐 거라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이 달려오던 이들의 발걸음을 늦추고,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이들 후위의 고참병들이 재촉하면서 전진했고,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넓게 펴진 양 날개에서 대기하고있던 활강총과 머스킷총병의 총에서 불이 뿜어져나왔고, 사상자는 순식간에 급증하기 시작했다.

...

"퇴각! 퇴각하라!"
"어째서 퇴각한다는 거냐! 전열을 지켜, 지키라니까!"
"이미 틀렸습니다, 퇴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용병대의 공격에 자신의 군대가 순식간에 녹아내리자 이 귀족은 비명을 지르며 외쳤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부하들이 너무 늦은 퇴각을 권유했다.
그렇지만 이미 용병대의 화망은 귀족 부대를 감싸고있었고, 이 귀족은 눈먼 총알 아니면 화살에 맞아 즉사해 말馬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

해가 천천히 지기 시작하면서 처참한 전장을 가려주기 시작했고, 동레미 마을 주변 평야는 여파로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혹시나 남은 적이나 증원이 있을까봐 정찰병을 해가 지기 전까지 주변을 정찰하도록 했고, 가능한 빠르게 전리품 회수를 시키도록 했다. 그렇지만 전장과 주둔지로 실려가 치료 중인 부상자들의 신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건 귀가 밝은 사람이 아니라도 생생하게 느꼈으리라.

다음 날 아침에도 전장의 흔적은 남아있었고, 부서진 뼛조각 사이에서 주황색 액체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자, 쟌은 그대로 가까운 숲에서 구역질을 했다.
한참을 구역질을 하는 쟌의 등을 잠시 두드려 준 대장은 보고를 받은 뒤 말했다.

"보이니?"
"……."
"이게 현실이야."
대장이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쟌은 구역질을 멈출 수 없었고, 눈물이 글썽할 때까지 구토를 한 뒤에야 다시 전장을 볼 수 있었다.
서로가 처참하게 죽고, 시신조차 제대로 건진 자들이 없었다. 시체들은 제대로 매장되기는 커녕 전장에 방치되어 썩어갈 운명이었는데다 수의는 커녕 약탈자들은 그들의 속옷, 무기, 깃발, 심지어 개인적인 물건들까지도 약탈 대상이 되었다.
쟌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신神이시여……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저의 연약한 마음을… 제 믿음 없음(不信)을 용서해주십시오...."
쟌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동안 그렇게 절규하던 쟌은 고개를 들어올려 곁에 있던 대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대장은 그런 쟌을 보고 말했다.

"전쟁에 나가고싶어?"
"전……"
"아직 난 너를 자세히 몰라. 하지만 네가 전장에 서면 미래에 기쁜 일로 돌아오지는않을 거다."

천사의 명령 이아기를 들어서 알겠지만 이게 아브라함계 종교의 문제점이라는 거다.
확실치도 않은 계시와 예언자라는 것을 통해 쉽게 사람들을 선동하고 세뇌하고 기쁘게 죽음으로 내몬다. 마약과 같은 황홀함에 빠져 기뻐하며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이 말이다.
그리고 유대교 그리스파의 지도자와 "사도"를 자칭한 타르수스의 사울과 그 후계자들이 만들어낸 "부활"과 "구세주" 교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교리에 속아 이용하고 이용당하고있을까.
특히 기독교인들이 떠받드는 사울의 개종. 이것조차 불분명하다. 오로지 사울의 증언만 존재하지 반대쪽의 증언이 없어서 그 환상체험이 진짜인지 확실치않은데다, 바이블과 외경에서 언급하는 이 작자의 전도 행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로마 세계를 향한 예수 전도가 아니다. 미래의 신생 권력을 노리고 전향해 찬탈하려는 야심가의 행적에 가깝지. 사울과 그 가르침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면서 견제했던 예루살렘 평의회가 이해될 정도다.

더구나 그 성녀(聖女)...
우리 역사에서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한 원인 중 하나가 스스로를 성녀로 자칭한 거다.
카톨릭에서 성녀나 성인으로 추대되려면, 당사자 사후에 주교에게 1차적으로 청원이 들어가고, 주교가 시성성에 서류를 제출한 뒤, 검토를 거쳐 3가지에 부합되어야 한다. 즉, 순교자, 영웅적인 덕행을 행한 자, 성인의 명성에 걸맞는 자, 이 셋 중 하나에 해당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기준으로는 최소 3가지의 기적이 증명되어야 하고…… 그 기적 심사는 문자 그대로 엄청나게 까다롭다.
물론 교황의 승인을 얻어 기적 심사를 면제받는 경우도 있지만서도.
그런데도 당시에 쟌은 스스로를 성녀로 자칭했다. 때문에 생전에도 곤란에 처했었고, 샤를 7세가 토사구팽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니 그런 건 없는게 맞지.

그런 설명을 해주자, 쟌은 혼란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전쟁에 나가더라도 천사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단 건가요?"
"그래, 그 존재가 천사인지 악마인지도 확실치 않을 뿐아니라 비난할 빌미가 될 수 있지."
당대의 기록을 봐도 쟌은 군재는 뛰어났을지 모르나 정치적 감각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골치아프군.
그리고 전쟁에 나가기 전까지 신학이나 교회법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었으니 재판에서 이단심문관을 당혹시켰다는 언변은 어디서 나온 건지 이해가 안되었다. 정말 신神의 도움이었나...

"집에 이야기는 했니?"
"오래 전에요."
뭐, 2- 3년 되었다고 하니 말 안한 게 더 이상하지. 게다가 내가 살짝 협박을 했던 마을 촌장님이 아버지란다...
그리고... 이렇게 쟌 다르크를 만난 이상, 아직 순진한 농촌 소녀의 모습을 보게되자 우리 역사에서 벌어졌던 샤를 7세에게서 당한 배신이 생각안날 수 없었다.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아가씨를 왕과 귀족들 틈에서 목숨이나마 건지게 해 주려면 이거 밖에 없겠지. 게다가 나와 우리 용병대는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 양 편을 편들지않기로 했지만, 이 나라, 프랑스를 구하려는 것이 그녀의 의지라면, 언제든지 맞서게 될 거다.
그리고 역사대로라면 오를레앙으로 달려가 프랑스군에 합류해 최초로 종군하는 때가 1429년. 내년이니 빠르면 1년 안에 맞붙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으로 만난다면 여러가지로 골치아프겠지만…

이 한 가지를 조심하시오. 오, 인간이여.
그대가 그대의 의지를 얼마의 가격에 팔고있는지 한 번 보라는 말입니다. 다른 할 일이 없어도 그대의 의지를 싸게팔지는 마시오.
-담화록(Discourses), 에피테토스(Epictetus, c, 55~ c.135)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2화. 합류.

"우리는 며칠 후에 여기서 떠날 예정이야.
물론 선택은 네가 하는 거지만 우리가 떠나기 전에 왔으면 좋겠군."
그 말을 남기고 대장은 쟌에게서 떠났고, 쟌은 그 모습을 조용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

약 1주일 뒤 새벽- 아침, 이 용병단은 주둔지를 해체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있었다.
부상자 치료와 사상자 정리, 유품 및 약탈품 정리, 물자 재고 확인, 재정 확인 뿐 아니라 이후에 다른 증원이 오고있는지 계속 정찰하고 확인해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둔지와 시설을 철거, 정리하는 용병대원들의 손놀림은 매우 빨랐는데, 이들 모두 상당한 숙련자라는 증거였다. 또한 같이 다니는 상단도 광장에서 빠른 속도로 정리하는 중이었고, 이들은 동레미 바깥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석포(射石砲, bombard)를 비롯한 중장비들을 말이 딸린 수레에 싣는 일이 있었지만, 매우 무거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했다.

그것을 여성 부관과 지켜보던 대장은 품에 짐 꾸러미를 안고 온, 약간은 부스스하고 피곤이 남아있는 소녀를 보고 말했다.
"결심했나?"
"그동안 열심히 기도했었어요."
"그런데도 확신이 안서는 모양이군."
"...네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소녀의 머리를 대장이 조용히 쓰다듬자, 숙여진 소녀의 얼굴에서 살짝 붉은 기가 떠올랐지만 아무도 보지못했다.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대장은 몸을 돌려 서서히 밝아오는 태양을 여성부관과 함께 바라보며 말했다.

"차차 알게되겠지만 나도 좋아서 용병대장까지 하는게 아니야.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나도 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
대장의 말에 어느새 얼굴을 든 소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여성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심이다. 그래, 동정심.
역사를 이대로 흐르게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예전처럼 여기 중세 시대에 떨어졌을 때를 떠올리자 결정했다.
이미 다른 쪽에서 역사를 많이 바꾸어봤다. 때문에 원래 역사대로라면 여기 동레미에 와서 확인할 때, 죽여버리면 되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전처럼 나를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신경안쓸 수 없었으니까.

...샤를 7세, 아니 지금은 시농 성에서 벌벌 떨고있는 도팽이지.
타인의 노력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된 고귀한 사람은 자신의 강점으로 성사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 망각은 왕자의 미덕이라고 했나.

이 아가씨, 쟌을 내 휘하에 거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알고있다는 것과 여러 경험들 덕에 군재는 그럭저럭 좋아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내 부관 중 하나가 된 쟌은 동료들과 함께 이 전쟁에서 우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겠지.
예전의 아이리스처럼 쟌에게 읽고 쓰기, 정치, 역사를 비롯한 지식을 가르쳐주고 미래도 바꿔준다. 그리고 쟌은 우리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겠지.
이 정도면 서로에게 공평한 거래 아닌가.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3화. 이동 중에.

그로부터 얼마 뒤, 어느 마을 외각에 주둔 중인 용병대 "번개".
주둔지 한쪽에서는 아드리아나가 쟌에게 목검(* 한손이든 양손이든 상관없다.)으로 기본적인 검술을 가르치고있었다. L은 틈틈이 아드리아나와 함께 여러가지 수업을 해주기로 했고.
"...묻고싶은 게 있었어요." 목검으로 계속 베고 가르는 훈련을 하는 중이라 헐떡이면서도 쟌이 아드리아나에게 물었다.
"뭔데?"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상단과 같이 이동하는 거죠? 불편할텐데..."
"나도 처음 L과 만나게 되었을 때 물어본 거야."
"이유를 알아요?"
"지금은 알고있지. 우선 우리 용병대원들의 생계문제."
"생계문제라면...?"
"간단히 말해 보급 문제야. 화약, 화살, 창, 갑옷 모두 돈이 드는 거라구. 그리고 생필품이 필요하쟎아.
때문에 상단을 만들고 데리고 다닐 수 밖에 없게되었어. 처음에는 나뿐 아니라 다른 용병들도 그런 걸 왜 만드나 했지만..."
"다음은요?"
"직업 문제.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용병대에서 물러난 사람들을 상단에서 받아 물건을 사고파는데 적성이 있는 사람은 상인이 되고, 다른 적성을 가진 사람들은 상단을 통해 재배치하지.
그리고 마지막은..."
"마지막은요...?"
"그건 비밀이지만 어쩌면 조만간 보게될지도 모르겠네." 아드리아나의 마지막 말에 쟌은 약간 실망하면서도 기대하는 표정이 되었다.

...

"오를레앙(Orleans)의 상황은?" L이 용병대 부장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 드류에게 물었고, 크리스티안은 살짝 감탄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상단이 마을 주변에서 입수한 소문에 따르면 잉글랜드 군과 부르고뉴 파의 방어에도 그럭저럭 버티고있다고 합니다.
역시 앙드레 드 로이야크(Andre de Laval-Montmorency, seigneur de Loheac, c. 1408 - 1485) 원수라고 해야할까요."
"그렇지만 지원이 안되는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 그건 로이야크 원수도 알고있을거야.
시농 성에 있는 우리의 도팽께서는?"
"소문에 따르면 자신을 위한 구세주를 찾으면서도 미치지않은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뭐, 발목을 잡고있는 출생 문제가 있으니까요."
"오를레앙이 함락되면 바로 눈앞에 들이닥치는 거지. 내가 도팽 입장이라면 약간의 지원이라도 보내려고 하겠지만..."
"...잘못하면 남은 정예 병력 모두 없어질 수 있죠."
"그래서 주저주저하면서도 못보내는 거겠고.
하지만 이 나라가 부르고뉴 파 천지가 되어도 어차피 잉글랜드 군과 부르고뉴 파는 싸울 수 밖에 없어."
"제가 프랑스인이라도 프랑스 국왕의 지배를 원하지 잉글랜드 인의 지배를 받기 싫으니까요."
"바로 그거야."
"...그래서 잉글랜드의 어느 백작을 찾는 겁니까?"
"그 백작이 만약 잉글랜드나 프랑스에 있다면 여파를 조금 줄일 수 있을까해서. 부르고뉴 공작이나 다른 높은 분들에게도 연결될 수 있쟎아.
아무리 우리가 양 편을 들지않는다고 해도 닿는 선이 여러 개 있으면 편하지."
"그렇긴 하군요." 납득이 된 표정으로 크리스티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L이 이어서 물었다.
"지난 전투에서 잡은 포로들은?"
"네, 우리 편이 되기 원하는 놈들은 제외하고 쓸모없는 나머지는 정리했습니다. 물론 몸값이 나가는 놈들은 제외하고요."
"동레미에서 우리를 공격한 놈이 누구인지 알았나?"
"물론이죠. 심문하면서 알게된 건데 저들은 부르고뉴 필리프 나리의 하급 부하지만 우리를 얕보고 공을 세울 목적으로 덤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을 독차지하려고 상부에 연락을 안했더랍니다. 게다가 동레미는 도팽을 지지하는 쪽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되려 자기가 잡혀먹힐 줄은 몰랐던 거고 그래서 지원군이 안왔던 거로군. 당연히 부르고뉴 쪽에서는 모르겠고."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 겁니까? 칼레(Calais)인가요?"
"칼레(Calais)가 아니야. 랭스도 아니고. 때문에 자네와 아드리아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의논 중이지않나." L의 말에 크리스티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질문이 있습니다."
"뭐지?"
"며칠 전에 동레미에서 받아들인 쟌이라는 아가씨 이야기입니다. 지금 대장과 아드리아나 부대장이 열심히 기본기부터 가르치고있는."
"왜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는 거겠지."
"네, 16살 여자애인 건 둘째치고 그때 거부할 수도 있지않았습니까."
"맞아.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한 번 가르쳐보고 싶어서 그래. 저 아가씨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다라..."
"어쩌면 우리에게 있어서 "승리의 여신"이 될지도 몰라.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이 말에 크리스티안은 "에이, 설마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4화. 악연을 끊다.

"젠장, 저 녀석.... 어디서 저런 비싼 물건을 손에 넣었지..."
"가이 대장님, 후퇴해야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부대는 무너집니다."
"무너져? 무너진다고? 좀 더 몰아부쳐야한다- 녀석도 언제까지나 버틸 수 없다구-"
후퇴를 종용하는 부관의 말에 가이라고 물리는 용병대 대장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계속 공격 지시를 내렸다.

"... ..." 한편 반대쪽에서 지시를 내리는 L의 표정은 심상치않은 표정이었고, 옆에서 지켜보는 아드리아나도 비슷했지만 먼저 그녀가 말을 걸었다.
"인연이 있는 분 같은데요."
"있다고하면 있지. 아드리아나를 만나기 전에,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적에 만난 놈이야.
가이 야게덴슈테른(Guy Jagedenstern). 잊을 수 없는 이름이지."
""별을 쫓는 자", 로군요."
"아드리아나가 신성로마제국어를 배웠는 줄 몰랐는데?" 살짝 놀랐다는 L의 어조에 아드리아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조금은요.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도 될까요?"
"예전에 4명이서 조그만 용병단을 꾸린 적이 있었어.
대장과 부관, 그리고 저 녀석과 내가 만든 용병단은 북유럽과 러시아 주변에서 그럭저럭 실적을 쌓고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 저 녀석이 갑작스럽게 내가 해고되었다고 통지를 해온 거야. 대장에게 물어보려했지만 녀석이 막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나올 수 밖에 없었어.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저 녀석이 대장 몰래 수작을 부렸더군."
"원인이 뭐였을까요?"
"삼각관계. 대장과 녀석은 부관을 서로 짝사랑하고있었고, 부관도 그걸 알고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내가 끼어들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부관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해있었지.
만약 어떤 형태로든... 아니, 그때에는 나도 생존에 우선이었는지라 정신이 없어서 못들었을 거야. 하지만 녀석은 알아차렸고...
...뒤에 들었는데 사정을 알게된 대장은 녀석을 해고시켰고, 용병단을 해체해서 부관과 함께 유럽 어딘가에 숨었다고 해. 아마 나를 볼 낯이 없을 거라 짐작은 하지만..."
"그렇지만 아직 방어진을..." 살짝 쓴 표정이 된 아드리아나의 말에 L은 고개를 저었다.
"...풀 수 없어. 초반에 사석포를 전개하고 퍼부어 충격을 주면서 상당수 줄이긴 했지만 저쪽은 아직 수가 많고, 녀석도 경험이 있지.
그렇지만 언제까지 녀석도 공세를 펼칠 수 없어. 문제는 그때까지 우리가 버틸 수 있느냐는 거지만..."
"...규모가 더 크면 좋을텐데요...."
"그럼 우회기동 전술도 가능하겠지..." 이 말에 아드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

"호오~ 그런 용병단이 있나요?"
"있다고 들었지. 다른 용병단과 달리 상단과 함께 이동한다더군."
"재미있군요. 이름이 뭡니까?"
"프랑스어로 또네르, 라고 하더군. 우리 영어로는 썬더(Thunder)로 번역되지."
"썬더 용병단이라... 만나보고싶긴 합니다."
"나도 만나보고싶네. 누가 그런 용병단을 이끌고있는지."
이동하는 영국군의 선두에 있는, 귀족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말을 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있었지만 이들의 이야기와 행군은 정찰병들이 돌아오면서 끊겨졌다.

"보고합니다. 저 조그만 언덕 너머 평야에서 두 용병단이 전투를 하고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용병단끼리의 싸움이라..."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이야기해주게."
"먼저 마을 바깥에 주둔한 번개 깃발을 든 용병단에게 다른 용병단이 문답무용으로 전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번개 깃발의 용병단은 반격을 시작했고요.
저희가 지켜본 것에 따르면, 다른 용병단의 펼치는 맹공에도 번개 깃발의 용병단은 잘 막아내고있습니다. 아직까지는요."
"호오..." 정찰병의 말에 두 귀족 중 한 명이 흥미있는 표정이 되었고, 다른 젊은 귀족도 재미있다는 표정이 되었는데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귀족이 먼저의 귀족에게 말했다.
"도우러 가야겠군요."
"그래야겠지. 하지만 상황을 듣자하니 부대 하나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되네. 알!" 귀족의 외침에 옅은 흑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뛰쳐나왔고, 귀족이 상황을 설명해줬다.
"알, 자네는 부대를 이끌고 가서 곤란을 겪는 용병단을 도와주게나. 아마 자네 부대 규모라면 충분히 구원이 될 걸세."
"어느 쪽입니까?"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5화. 요크의 리처드.

"레스터 기사, 요크의 리처드라고 하네."
"L이라고 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우리도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마침 자네들을 발견한 거야. 그래서 이렇게 구하게 된 거고.
이렇게 된 이상 잠시 같이하는게 어떤가?"
"...좋습니다."
알이 이끄는 잉글랜드 군 부대가 우회하여 기습해오자 그때까지 번개 용병단에게 맹공을 가하던 가이의 용병단은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방어로 일관하던 번개 용병단도 공세로 전환해 양면에서 공격받은 가이의 용병단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그제서야 전황을 깨닫고 도망치려던 가이는 알에게 잡히면서 그 짧은 생을 끝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 잉글랜드 군 본대가 도착하면서 전장 정리에 들어갔는데, 각 부대의 대장끼리 먼저 서로 통성명을 하게되었고, 이날 밤의 만찬에 아드리아나와 L이 대표로 초대되게 된 것이었다.

***

그날 밤, 번개 용병단과 가까이 자리잡은 잉글랜드 군 주둔지.
여기서는 요크의 리처드를 비롯한 몇몇 잉글랜드 군 지휘자와 L과 아드리아나가 자신의 용병단을 대표해 나와서 오랫만에 만찬을 즐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물론 L과 아드리아나는 부하들에게도 휴식도 줄 겸 이런 만찬을 즐기게 하는 걸 잊지않았고.

한편, 번개 용병단 주둔지.
용병단 병사들이 잉글랜드 군이 준 물자로 조촐한 파티를 벌이고있는 동안, 한쪽에 있는 천막에서는 크리스티안 드류가 지도와 각종 서적을 펴놓고 쟌에게 강의하고있었다.
"알다시피 우리 대장은 지형지물에 특히 민감해.
오늘, 저들의 파상공세에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지형을 적절히 이용해서야."
드류의 설명에 쟌이 고개를 끄덕였다. 쟌도 옆에서 아드리아나와 함께 L이 지휘하는 것을 보고있었으니까.

"알기 쉽게 10여년 전(* 정확히는 1415년 10월 25일.)의 아쟁쿠르 전투(Bataille d'Azincourt, Battle of Agincourt) 때를 들어 상황을 설명해주지...."
이렇게 L과 아드리아나가 자리를 비울 때면 드류가 쟌의 교육을 맡기로 결정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던 드류지만 쟌이 쏙쏙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더 신나서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의가 진행되는 중에 쟌이 드류에게 물었다. "지금쯤 저쪽 잉글랜드 군 주둔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을까요?"
"글쎄, 대장과 부대장이 돌아오면 알겠지만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뭐, 대장이니 잘하고있겠지."

다시 잉글랜드 군 주둔지의 작은 만찬장.
"자네들의 용병단이 의외로 유명한 줄 몰랐지?" 장난스럽게 요크의 리처드가 말했고, 이에 L과 아드리아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정말 몰랐습니다."
"상단을 이끌고 다니는 특이한 용병단이라고 부르고뉴 공국에까지 소문이 났어. 그리고 우리 귀까지 들어왔지. 아마 다른 유럽 국가들도 소문을 들었을거네."
"이렇게 우연이지만 만나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하네." 다른 젋은 귀족이 요크의 리처드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왜 거추장스런 상단을 끌고다니는 건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습니다만.... 일단 생계문제가 가장 크죠."
"흐음..." L의 간략한 설명에 요크의 리처드와 젋은 귀족도 흥미있는 표정이 되었고, 설명이 끝나자 요크의 리처드가 젋은 귀족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쪽 가문도 옛날부터 상업에 힘쓰고있지않았소?"
"상업은 우리 가문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죠."
"그리고 그것으로 지금 왕실에 지금 프랑스의 전쟁 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해주고있고. 때문에 대대로 잉글랜드의 폐하들은 어느 누구보다 자네들 가문을 중시하고있지."
"맞습니다."
이어서 두 사람은 L과 아드리아나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봤고, 이들의 대답에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않았다.
"...그래서 자네는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 편 양쪽을 들지않겠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이라..." L의 말에 요크의 리처드와 젊은 귀족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지만, 잉글랜드의 상황을 묻는 L의 질문에 적당하게 대답해줬다.
"...이게 잉글랜드의 상황일세. 자네 생각은 어떤가?"
"지금이야 이 전쟁 때문에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려있지만 오를레앙의 운명에 따라 갈리겠죠."
"역시 오를레앙인가."
"거기가 버티느냐 함락되느냐에 따라 지금의 잉글랜드 국왕 폐하에게 힘이 더 집중되거나 아니게 될 테니까요."
"맞는 말이군. 그렇지않아도 섭정인 베드포드 공작과 글로스터 공작의 실정에 조금씩 말이 나오고있으니까."
"게다가 이 전쟁 초기에 잉글랜드는 호황이지않았습니까? 그걸 아직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죠."
"전쟁에서 재미를 보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본 적이 있습니다." L의 말에 두 귀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지나가자 회제를 바꿀 겸 요크의 리처드가 말했다.
"보아하니 자네들도 나름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거 같더군. 여흥을 위해 우리 알 틸레든 부장과 한 번 검싸움을 해보는게 어떤가?"

...

"도서관이 있다고요!?"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이런 용병단에 도서관이 있다는 크리스티안의 말에 쟌은 매우 놀란 표정을 감추지않았다. 그것을 보고 크리스티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놀란 모양이지?"/"진짜인가요?"
"상단과 이 주둔지 안에 소규모지만 이동식으로 갖춰져있어. 대장의 명령이라 도시에 들를 때마다 필사본을 구입하려고 노력하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용병이라도 지금부터 공부하지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다, 고 말하니까."
"값이 비쌀텐데요..."
"그래도 어떻게든 구입해."
"상단이 있어서인가요?"
"그쪽 덕분이기도 해. 그나마 다른 용병단에 비해 적어도 배는 곪지않으니까.
쟌도 책에 흥미있다면 빌려볼 수 있어. 별별 책이 있지만 다 보면 반드시 돌려줘야해. 대여증이라는 게 있거든."
크리스티안의 말에 쟌도 호기심이 생겼고, 다시 크리스티안에게 질문했다.

"크리스티안씨, 크리스티안씨도 이 용병단 안에서 아드리아나씨처럼 고참이죠."
"맞아. 그렇다고 내 경우는 아드리아나 부대장처럼 극적이지않아. 난 아드리아나보다 조금 늦게 합류했어도 대장의 인품에 먼저 반했거든."
"아드리아나씨는 어땠길래..."
"차차 물어보면 알게될 거야."

비슷한 시간, "번개" 용병단과 가까운 잉글랜드 군 주둔지에서는 요크의 리처드와 젊은 귀족 및 잉글랜드 군 상부, 그리고 아드리아나가 긴장하면서 지켜보는 가운데, 칼집에 든 칼로 맞붙은 L과 알 틸레든의 검싸움이 끝났다. 그리고 이것을 본 사람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이제 곧 잉글랜드 군은 자신들의 목적지로 향해 갈 준비를 했고, "번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에 소수의 경호병을 데리고 젋은 귀족이 L을 방문했고, L도 그를 반가이 맞으면서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했지만, 곧 바깥을 지키는 호위병을 제외하고, 안의 모든 사람들을 물렸다.

"이제 괜찮나?"
"괜찮을 겁니다. 바깥의 친구들이 너무 듣지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이야기한다면요."
"날 보자고했지. 이유가 뭔가?"
"레스터 기사님과 함께 떠나기 전에 이야기할 게 있어서입니다." L의 이 말에 이 귀족도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말했다.
"이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문제인가?"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L. 그리고 L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쪽과 좋은 관계를 맺고싶어서요. 로드(Lord) 아델레이드."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6화. 아델레이드 가문.

L과 어느 귀족이 이야기하고있는 사이에 다른 천막에서는 아드리아나와 쟌이 체스를 두면서 이야기하고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말의 이름과 초기배치, 이동방법부터 알려줬지만, 영민한 쟌은 조금씩 실력이 성장하고있는 중이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요?"
"나도 몰라. 바깥의 경호병을 제외하고 나까지 포함해 전부 다 물렀으니까."
"그 정도로 그 귀족분이 중요한 거겠죠."
"연회에서 들었던 잉글랜드의 높으신 분들까지 그 귀족 집안을 중요시여긴다는 걸 보면..."
"...그 정도면 정말 대단한 건데요."
"그러게 말이지."

한편, 담담하게 말한 L에 비해 로드 아델레이드라 불린 이 젊은 귀족은 잠시 크게 웃었지만, 웃음을 멈춘 로드는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맞네. 로드 아델레이드야."
"그리고 차기 아델레이드 백작이시죠."
"여기서 무사히 살아돌아간다면 말이지."
"유별나게 백작가는 C와 V, 장남은 P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죠. 그래서 알았습니다."
"재미있군. 그래서 이렇게까지 비밀스럽게 부른 진짜 용건이 뭔가?"
"서로에게 좋은 관계를 맺고싶어서입니다.
백작가의 상단이 다른 유럽 귀족들과 달리 전 유럽에 걸쳐있는 거 압니다. 심지어 저 러시아와 비잔틴, 튀르크까지 향해있더군요.
그리고 잉글랜드 왕가와 부르고뉴 공국, 만약을 위해 시농에 있는 도팽에게 선을 살짝 놔주십시오."
L의 말 뜻을 알아차린 로드 아델레이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자네는 지금 전황을 어떻게 보지?"
"문제가 없으면 잉글랜드는 부르고뉴 파와 함께 이 나라, 프랑스를 정복하겠죠.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과 부르고뉴 파가 그걸 용납할까요?
불씨만 생기면 들고일어날 겁니다."
"그럼 왜 저들은 시농의 도팽을 지지하지않을까?"
"출생 문제 때문이죠. 트루아 조약(1420)이 맺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거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권위있는 누군가가 도팽을 인정해주고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가 화해하면 달라지죠."
"아직 그런 자가 나타나지않은게 다행이라는 거로군."
"맞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게 되면 승자와 패자 모두 휴우증에 시달리게 되죠."
"요크와 랭카스터로군. 아직까지는 이 전쟁에 집중해서 아무도 모르고있지만."
"이기든 지든 잉글랜드의 내전은 피할 수 없을 거라 봅니다."
"런던의 본가도 그렇게 예측하고있네. 자네라면 어느 편을 들텐가?"
"지금 대답할 문제는 아니죠."
"확실히 지금 말할 문제는 아니지. 자네의 조건은 타당하다고 생각해. 자네 상단과 거래하는 문제는 본가와 상의해야할 문제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될 거 같군.
전에도 말했지만 자네들을 찾는 건 우리 뿐만 아니야.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 양 파벌이 기를 쓰고 찾으려고하니까.
오를레앙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

잠시 뒤, 주둔지를 풀고 다시 행군을 시작하는 잉글랜드 군을 L과 함께 배웅하는 아드리아나가 말했다.
"저 로드와 무슨 이야기를 했었나요?"
"우리가 저 잉글랜드 군과 같이 가지않은 건 로드 덕분이라고 해야될 거야. 하지만 생각하고있었던 것의 절반 정도는 이뤄졌다고 해야겠지."
"다행이네요. 하지만 런던, 디종과 시농이 우리를 찾는 건 어떻게 하기로 했죠?"
"로드가 오를레앙에서 다시 재회하길 기대한다고 말했으면 대답이 되었을까? 그리고 알 부장에게도 안부 전해달라고 했어."
"그런 유능한 부대장이 몇 명 더 있으면 하고있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쟌도 열심히 배우고있지만 한 사람 몫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쟌이 빠르게 배우고있다는 거 인정할게요. 이해력과 응용력에는 나도 크리스티안도 놀라고있으니까."
"그럼 우리도 이동을 시작해야지."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7화. 부르고뉴 공국과 시농 성.

부르고뉴 공국, 네덜란드의 겐트(Gent), 그라벤스테인(Gravensteen) 성.
부르고뉴 공국의 수도는 공식적으로 디종(Dijon)이지만 지배하는 공작들에 따라 이동했기에 불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필리프 3세는 겐트의 그라벤스테인 성에 머무르면서 신하들과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래서 지금 오를레앙의 사정은 어떠한가?"
"잉글랜드 군이 성을 포위하고있지만, 아직 프랑스 군은 버티고있습니다."
"총책임자는 쟝 도를레앙(Jean d'Orleans), 쟝 드 뒤누아(Jean de Dunois, 1402.11.23 - 1468.11.24) 백작입니다."
"뒤누아 백작인가... 잉글랜드 쪽은 솔즈베리 백작(Earl of Salisbury, Alice Montagu, 1407 - 1462.12.09 이전)과 존 패스톨프 경(Sir John Fastolf, 1380.11.06 - 1459.11.05)이 지휘 중이라고 들었네."
"오를레앙만 무너지면 파리는 물론이고 시농까지 시야에 넣게됩니다."
"그럼 도팽이라 자처하는 밉살스런 자도 생포할 수 있죠."
"도팽이니 뭐니해도 결국 사생아지않습니까."
이 말에 필리프 3세와 신하들은 한동안 너털웃음을 터트렸으나 곧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이들도 자신들이 주도하는 부르고뉴 파가 잉글랜드의 도움을 받아 아르마냐크 파를 제압해 프랑스를 정복해도 내심 잉글랜드 군이 마음에 안들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니까.

"만약 잉글랜드 군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에 대비한 방법은 준비하고있는가?"
"네, 지금 여러가지로 준비 중입니다만... 조심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소문은 들었으리라 생각하네. 이 전쟁 때문에 용병단들이 많이 참가하고있지만 그 용병단만은 유별나더군."
"그렇습니다. 상단을 데리고 다니는 건 대수롭지않지만, 난민들을 보호한다고 하죠."
"심지어 몇몇 난민들은 이 용병단을 따라다니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난민들을 상단의 직원으로 고용한다고도 하죠."
"흥미있구먼. 이름은 알고있나?"
"또네르 용병단이라고 합니다."
"또네르라... 그 용병단을 이끄는 자를 한 번 만나보고싶군."
"고작 용병단인데 왜 만나려 하십니까?"
"용병단이기 때문이라네. 리니 백작!" 필리프 3세의 호출에 리니 백작 쟝 2세(Jean II de Luxembourg-Ligny, 1392 - 1441.01.05)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필리프 3세에게 목례를 했고, 답례한 필리프 3세가 즉각 지시를 내렸다.
"백작은 즉시 그 또네르 용병단을 찾아주기 바라오. 비록 병력은 최소한이지만 정예로 주겠소.
용병단인만큼 오를레앙이나 파리 등의 큰 전투에도 참가하고싶겠지."
이에 리니 백작은 내심 난제를 맡게되었다면서도 찾아보겠다는 말을 필리프 3세에게 했다.

비슷한 시간, 이동 중인 "번개" 용병단.
용병단과 함께 이동하는 중인 L은 웬지 귀가 간지러운 표정을 지었고, 같이 선두에서 말을 몰던 아드리아나가 의아한 표정이 되어서 물었다.
"L, 무슨 일이에요?"
"아, 잠시 귀가 간지러운 것 뿐이야.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지?"
"그런가봐요. 때문에 여러가지로 힘들어졌고요."
"덕분에 우리를 사칭하는 놈들도 있지. 때문에 그런 놈들은 보이는 족족 때려잡고있지만서도." 아드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싸웠던 가이 야게덴슈테른도 L에 대한 앙심과 함께 "번개"를 사칭했었으니까.
"그때에는 로드 아델레이드와 레스터 기사님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정말 위험했다구요."
"인정해. 하지만 덕분에 잉글랜드와 부르고뉴 쪽에 선을 놓게 되었쟎아." 아드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을 이었다.
"상단 쪽을 통해 들어온 소문 알죠? 천사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곳곳에 늘아나고있다는 거.
카트린느 드 라 로셀(Catherine de la Rochelle)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내가 만난 성인(聖人)이 밤마다 나타나 금은보화를 놓는다"고 주장 중인데 여러 사람이 믿는다는군요."
"...사기꾼이네. 부르고뉴나 잉글랜드, 시농이 그런 걸 그냥 둘까? 우리조차도 매춘부는 접근 금지라고 단단히 못박아두는데도 기어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있지."
"쟌에게도 이야기해줄 거죠?"/"해줘야지."
그런데 앞길에서 이들은 마차와 이 마차를 호위하는 일단의 작은 호위병단과 마주하게되었는데 상태를 보아하니 어느 귀하신 분이 타고있는 것 같았다.

...

한편 투르, 시농 성.
시농 성의 회의실에서는 샤를 도팽이 신하들과 군인들에게 지지부진한 오를레앙 공방전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있었다.

"도대체 왜 뒤누아 백작은 오를레앙 성에서 뭐하는 거요! 병력을 충분히 줬쟎아!"
"잉글랜드 군의 공격이 강고하긴하지만 오래 못버틸 겁니다. 그리고 예로부터 성을 공격하는데 방어군의 4배 병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빌어먹을... 로이야크 원수가 뒤누아 백작과 함께 있지... 원수는 뭐하는게야!
오를레앙이 넘어가면 파리고, 이 시농이란 말이야! 잉글랜드와 부르고뉴의 필리프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라고!"
신하들과 군인들은 샤를 도팽이 표출하는 분노에 서로 곁눈질하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겁이 많아지신 것도 이해가 가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두려움을 없애려하는 거겠지. 권위있는 누군가가 전하를 인정해주시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 ...그렇다고 카트린느 드 라 로셀같은 사기꾼을 데리고올 수 없지않소.

"전하..."/"뭐야!?" 어느 신하가 총대를 매고 나서자 샤를 도팽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용병단이 있습니다."
"용병단은 많고 많네. 이 시농과 오를레앙에도 있지."
"좀 독특한 용병단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독특한 용병단?"
"네, 상단을 가지고있지만 때문에 난민들이 선호한다고 합니다."
"...대체 왜?"
"잘 모르겠습니다만 몇몇 난민들은 그 용병단의 보호를 받는 걸 선호하고 일부는 용병단이 보호하는 상단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름이 뭔가?"
"또네르 용병단이라고 합니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샤를 도팽은 지시를 내렸다.
"당장 그 용병단을 찾아와!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 이 프랑스의 황태자를 보호해주고 오를레앙을 보호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알겠습니다. 전하."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8화. 칼레로 향하는 길(1).

이동 중에도 쟌에게 기초 군사 지식을 비롯해 여러가지를 가르치려는 L과 아드리아나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현재 이 시대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무기 다루는 법을 비롯해 각 병종들의 사정거리와 상관관계를 가르치면서 지도와 모형 군대를 이용한 간이 워게임을 통해 어떻게 군대를 운용하는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독자적인 전략, 전술을 창안해내어 L의 공격을 막아내는 쟌의 숨은 재능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보급이 중요한 거군요. 아드리아나씨와 크리스티안씨가 말해준 대로에요."
"맞았어. 우리가 거추장스럽더라도 상단을 끌고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거지. 몇몇 여유가 있는 용병단에게 상단이 붙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는 반대거든."
"전선이 길면 길어질수록 보급이 늘어지고... 보급이 늘어지면..."
"...상대방에게 격파당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이어진 L의 말에 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빈틈을 여러가지 형태로 공략할 수 있고요."
"많이 오래된 예지만 1,200년 전 중국에서 그런 식으로 이긴 장수가 있었어. 이건 세계 공통이라고 봐도 좋아."
"흐음..." 잠시 생각하던 표정이 된 쟌.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 L이 카트린느 드 라 로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쟌은 상당히 놀라면서도 창백한 표정이 되었다가 간신히 말했다.
"... ...사기꾼이네요."
"사기꾼이지. 만약 네가 천사를 봤다고 했으면, 사람들이 믿어줄지는 둘째치더라도 저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맞아요. 그리고 얼씨구나하면서 카트린느의 말을 믿었겠죠. 그리고 그 사람은 제가 믿어줬다면서 더 사기행각을 벌였을거구요." 이 말을 듣자 L에게서 쓴 웃음이 미묘하게 새어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게 네가 원래 역사에서 카트린느에게 당한 거야. 다행이 2일째에 사기임을 깨달아서 그녀에게 주의를 주고 샤를 7세에게 편지까지 썼다지만 너 자신이 죽는 것은 막지못했지.

"그리고 카트린느처럼 천사를 봤다며 사기행각을 벌이는 자들이 프랑스 전역에 조금씩 늘어가고있다고 해.
상단이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런 사기 행각이 부르고뉴 공국에까지 퍼졌다던가... 적어도 공국은 단속하는 게 확실한데..."
"왜 그런 사기행각을 벌이는 거지요?"
"결국에는 돈이 되니까. 대개 귀가 얇고 시야가 좁은데다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달콤한 말로 혼란시키면서 뜯어낼 수 있거든."
"유언비어(* 2020년대인 지금은 가짜뉴스.)와 마찬가지군요."
"맞았어. 때문에 조심하지않으면 안돼지. 그런 유언비어와 사기에는 아무리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도 속아넘어갈 수 있고 거기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거든.
이건 전쟁에도 통용될 수 있는데, 그건 다음에 가르쳐줄게."
쟌이 고개를 끄덕였다.

...

"밖에서 들었는데 저 아가씨를 열심히 가르치고있더군요. 그리고 저 아가씨도 열심히 배우고있구요. 감탄했어요."
쟌이 떠나고나서 자리를 바꾸듯이 귀부인이 L의 천막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는데, 그 사이에 지도와 워게임을 하던 흔적은 거의 치워져있었다. 그리고 감탄이 들어간 귀부인의 말에 L이 살짝 쑥쓰러운 듯이 대답했다.

"과찬입니다. 레이디.
특별하게 우리 용병단에 지원한 아가씨라 기초부터 배우지않으면 안되서요. 시간이 나는 동안 저를 비롯한 모두가 가르치고있습니다."
"밖에서 들은 거지만 서로 열심히 가르치고 배움을 받는게 대단해보였어요. 먼저 무리한 제 요청을 받아들여줘서 감사하게 여기고있습니다.
잉글랜드 령을 지나가고있고 호위병들이 있지만 도적들을 걱정안할 수 없었지요."
"네, 특히 이런 전쟁 때에는 도적과 강도들이 설치기 쉽죠. 레이디같으신 분은 당연히 1순위일 겁니다. 그런데 종군한 남편은 무사히 만나셨습니까?"
"신神의 도우심으로 남편이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만날 수 있었죠. 때문에 지금 칼레로 향하는 거지만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건 레이디 뿐 아니라 전쟁에 참가 중인 남자들이 있는 다른 잉글랜드와 프랑스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L의 대답에 이 레이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맞네요."
"네, 그래서 전쟁이 서로에게 비참한 거지요." 이 말에 레이디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칼레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용병 일을 하면서 여러 번 바닷가나 호수에 가보기는 했지만, 저 아가씨에게 보여주고싶은게 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고싶으신가요?" 레이디의 이번 어조에는 호기심이 섞여있었다.
"바다입니다. 넓은 바다를 직접 보게되면 생각이 더 넓어지겠지요."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09화. 칼레로 향하는 길(2).

며칠 후, 어느 마을 외각에 주둔한 "번개" 용병단 주둔지.
L, 아드리아나, 그리고 크리스티안에게 교육받지않을 때, 쟌은 상단과 함께 물건을 사고팔거나 식재료를 사서 음식만드는 걸 돕고, 때에 따라서는 이들이 보호하고있는 난민의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는데, 때문에 "성녀(聖女)께서 이 용병단 안에 계시다"는 소문이 조금씩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 마을 주변을 정찰한 정찰대가 돌아와 보고하는 중이었다.

"...그럼 이 주변에는 부르고뉴 군이나 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들이 지금은 안보인다는 말이로군."
네, 그리고 아라스(Arras, Atrecht)가 가깝습니다."
"아라스인가... 우리가 보호 중인 난민 집단 중에 아라스까지 가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있으면 다른 자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죠."
"동레미나 다른 때처럼 말이지? 확실히 그런 경우가 있었지. 그리고 난민들 관리는?"
"대장께서 명령하신 바대로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 성향로 나뉘어서 관리 중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않도록 철저하게 일러두는 중이고요."
"하지만 묘한 소문이 돌고있습니다."
""성녀(聖女)께서 우리 용병단에 계시다"는 거죠."
"어디서 시작되어 퍼지는지 알만하죠."
"그렇다고 이미 퍼진 소문을 막을 수도 없고..." 잠시 웅성이던 "번개" 용병단 수뇌부 사람들의 말은 L이 이렇게 말하면서 종결되었다.
"이미 퍼진 소문은 신경쓰지말고 먼저 아라스에 가고싶어하던 난민들에게 알려줘. 이대로 가면 2- 3일 내에 아라스 근처인가?"
"그렇습니다."

비슷한 시간, 잉글랜드의 런던 외각에 위치한 아델레이드 성城.
한 사람이 아델레이드 백작에게서 지시를 받고있었다.
"...그럼 전 칼레에서 대기하고있으면 되는 겁니까?"
"그 용병단이 칼레에 도착하면 이미 약속한 신호를 보내기로 했네. 그걸 보고 따라가면 되네.
하지만 나름대로 유명한 용병단이니 쉽게 찾을 수 있을거야."
"저도 그 용병단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을 듣긴했습니다만 직접 만나게 되는 행운을 잡게되니 놀랍군요. 저쪽의 요구사항은 뭡니까?"
"간단해. 일단 상단끼리 거래를 트자는 거지. 그 문제를 자네가 전권대리로서 교섭해주었으면 하는 거야. 저쪽은 우리에 대해 잘 알고있는 듯 하니 거기에도 신경쓰도록 하게."
"중요한 임무군요." 백작의 말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 느끼는 보고자였다.
"매우 중요한 임무지. 그리고 그들이 요구한 다른 사항은 내 쪽에서 시간을 들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게."
"알겠습니다. 언제쯤 출발하면 될까요?"
"곧 저들이 칼레에 도착한다니 조금은 서두르는게 좋아. 아, 그리고 가는 김에 "성녀(聖女)"에 대한 소문도 조사해오게. 신경이 쓰이니까." 백작의 말에 보고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

회의가 끝나고 부대장들이 전부 나갔지만 아드리아나만 남아서 L에게 물어봤다.
"그 "성녀(聖女)" 소문, L은 어떻게 생각해요?"
"쟌이 난민의 아이들을 돌보는 건 아드리아나도 봤쟎아. 아주 잘 돌보고있던데."
"그 모습에 우리가 보호 중인 잉글랜드의 어느 레이디까지 감탄했죠.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거 같네요. 오를레앙으로 갈 듯 하다가 칼레로 향하는 이유가 정확히 뭐에요?"
"오를레앙의 프랑스군은 아직 여유가 있고, 현재 칼레는 잉글랜드 령이니 거기에서 할 일이 있다는 거지." L의 말에 아드리아나도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설마 해협을 건너는 건 아니죠?"
"건너지않아. 여기서의 일이 가장 중요한데 해협을 건널 이유가 전혀 없쟎아."
"...그렇긴 하군요. 레이디의 일도 있고. 하지만 칼레에서 L이 할 중요한 일이라는게 대체 뭘까요?"
"칼레에 도착하면 자연히 알게될 거야."
"자연히 알게된다니..."
"미안하지만 다 말할 수 없어. 중요한 일이니까."
"상단 쪽인가요?"
"상단과 우리 양쪽 다. 그리고 거기까지."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죠? 레이디 건 말고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관계있죠?" 유별나게 이번의 아드리아나는 캐묻고있었고 L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어. 레이디 건과 별개, 해협을 건너지않아. 그리고 상단과 우리 양쪽에 관계된 중요한 문제야."
"쟌은요?" ...사실대로 대답할까, 왜 쟌을 언급할까 생각하던 L은 쟌을 언급하던 아드리아나의 날카로운 분위기를 눈치채고 급히 말을 바꿨다.
"생각해둔 게 있어."
"날씨만 좋으면 칼레에서 잉글랜드를 바로 볼 수 있으니까 말이죠."
"...맞아....;;;;"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0화. 칼레로 향하는 길(3).

몇몇 난민 집단을 아라스에서 내려준 "번개" 용병단은 아라스를 경유해 작은 전투를 치루면서 칼레로 향하고있었다.
그리고 여유 시간이 생긴 L은 쟌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준비된 목검을 들며 설명했다.

"좋아. 잘하고있어.
이 칼로 요리를 할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 있지.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야.
네가 가진 힘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지. 하지만 그 힘은 다양하며, 그건 검, 돈 또는 권력이 될 수 있어.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너와 내 생각이 옳을 수 없지. 황제, 왕이나 교황도 마찬가지야."
설명과 함께 목검을 휘두르자 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목검으로 L의 목검을 막으며 받아쳤다.

"아드리아나와 크리스티안이 설명해줬을 텐데. 검술의 기본이 어떤 것이라고."
동시에 쟌의 발이 흙바닥을 걷어차 흙먼지를 날렸고, 시야가 방해된 틈을 타 목검이 날아들었지만,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 L에게 쟌의 목검이 스쳤다. 살짝 등에 식은 땀이 나는 걸 느끼면서 L이 말했다.
"잘했어. 때로는 비겁해지고 비열해져야만 승리한다. 네가 싸울 곳은 검술 시합장이 아니야. 전장이지."
"그렇지않은 사람이 있었나요?"
"있었어. 전장과 시합장을 착각해서 "불살(不殺)"을 외치던, 강력한 힘을 가졌던 네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었지. 자신이 가진 능력과 검 하나로 전장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해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결국 모두에게 따돌림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어. 그래야 됬지.
물론 경우에 따라서 정정당당하고 용감해야하지만, 시늉 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어."
L의 말에 쟌은 고개를 끄덕였고, 한동안 목검을 부딪치며 열중하던 두 사람은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오늘 낮 수업은 이것으로 끝. 밤에는 문학과 이론 공부야. 그럼 가서 씻고 쉬어."
"네, 알겠어요."
"아, 이건 중요한 건데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완벽한 존재는 신神 뿐일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 자가 이단이야." 이 말에 쟌은 살짝 굳은 표정이 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뒤, 훈련장에 들어온 건 다름아닌 이들 "번개" 용병단이 보호하면서 이동 중인 레이디였고, 이 레이디는 남아있는 격한 훈련의 흔적을 보면서 감탄했다.
"여전히 대단하시군요."
"저 아이에게 숨은 재능이 있어서 여러가지로 가르쳐주는 중입니다. 꽃피울지 말지는 저 아이에게 달렸지만요. 랭카스터의 레이디." L의 이 말에 이 레이디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대답했다.
"언제부터 알고있었나요?"
"물론 처음에는 몰랐죠. 하지만 마차에 장식된 붉은 장미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합류하게 되자 부랴부랴 마차에 가림막을 씌울 수 밖에 없었죠.
저희들이 보호하고있는 난민들에게 해를 당하지않게하려면요."
"그런 배려에는 랭카스터를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그런 인사는 칼레에 도착할 때까지 아껴두시죠. 칼레에 도착하면 할 일이 많으시겠지만."
"정말 해야할 일이 많아요. 런던에 갈 배편을 알아봐야하니까." 이 말에 L도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그렇죠. 중책을 맡으신 분이니까요."
"잉글랜드에 오면 좋겠는데요. 이 용병단과 같이."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나면 갈 수 있을테죠... 하지만 랭카스터의 레이디,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휴우증을 남기는 법입니다. 그때가 오더라도 개인적으로 무사했으면 좋겠군요."
엄청난 중요한 의미가 함축된 이 말에 랭카스터의 레이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뒤, "번개" 용병단은 칼레에 도착했고 며칠동안 함께하던 랭카스터의 레이디와 그 호위단과 헤어졌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1화. 칼레(1).

"..." 칼레의 어느 절벽에 서서 영불해협을 보게된 쟌은 감탄사를 제외하고 할 말이 나오지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이기에. 옆에선 L은 쟌에게 물었다.
"어떻지?"
"굉장히 크네요.... 바다는 처음 봤어요. 두 분은 어때요?"
"용병 일을 하면서 바닷가와 호수는 많이 봤어. 하지만 여기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곳 중 하나야."
"마침 오늘은 날씨가 맑으니까 잘 보이네. 저기 하얀 절벽이 있는 곳이 잉글랜드의 도버(Dover)야." 아드리아나가 말한 대로 유명한 도버의 백악절벽(白堊絶壁, White Cliffs of Dover)이 우리 눈에 보이고있었다.
"그리고 여기, 칼레를 건너면 바로 잉글랜드다."
"....의외로 가깝네요." 살짝 놀란 어조의 쟌.
"그래서 잉글랜드 인들이 무슨 수를 써더라도 이 도시를 사수하려는 이유기도 하지." L의 말에 아드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런 곳이 지중해에도 있지. 카스티야 왕국의 지브롤터(Gibraltar)와 포르투갈령 세우타(Ceuta)와 모로코 무와히드 왕국의 멜리야(Melilla).
병으로 치면 병목에 해당하는 곳이기에 거기를 차지하면 지중해를 통제할 수 있어."
아드리아나의 말대로다. 그런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지금도 스페인의 지브롤터는 영국이, 모로코의 세우타와 멜리야는 스페인이 실효통치하고있지. 각각 스페인과 모로코가 돌려달라고 하지만...

"이 나라, 프랑스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있지.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 육군 못지않게 해군도 중요해질 거야.
그걸 이웃인 잉글랜드나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스페인), 신성로마제국,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이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가만히 보고있겠냐만은..."
"북유럽 국가들은 어때요?"
"프랑스에 해군이 재건되면 두번째로 경계할 나라들일거야. 아드리아나도 알다시피 위로 올라가면 북해와 발트해니까."
"의외로 이 나라는 적이 많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적이자 동지이지." 걱정스런 쟌의 말에 대한 L의 대답. 그리고 이 대답에는 아드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벌어지고있는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땨라 프랑스에 대한 유럽과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의 태도가 결정될 거야."
"...어렵네요." 이 말에 한숨을 쉬는 쟌. 이것에는 L도 아드리아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

조금 뒤, 칼레 외각에 주둔한 "번개" 용병단의 대장 천막에는 손님이 와있었고, L은 반가이 이 손님을 맞고있었다.
""번개" 용병단의 대장 L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잉글랜드의 아델레이드 백작을 대리해서 온 더글라스 맥도날드라고 합니다."
더글라스 맥도날드라... 미래에 태어나면 비행기와 햄버거를 잘 팔아서 부자가 될 이름 같은데...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2화. 칼레(2).

"잉글랜드에서 온 사람과 L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 걸까요?" 훈련장에서 목검으로 훈련을 하면서 쟌은 아드리아나에게 물었다.
"아직 몰라. 하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건 알아."
"어떻게 알죠?"
"뒤에 나와 부장들에게 설명해주니까. 뭐, 진짜 중요한 일은 때가 될 때까지 말안해주겠지만.
하지만 너에게도 기대하는 것이 있기도 하지. 그렇지않으면 칼레같은 곳에는 오지도 않을 건데."
"저에게요...?"
"이번에 칼레에 오지않았으면 바다 구경하기는 어려웠을테니까."
"...그건 그렇네요. 바다는 정말 처음 보는 거니까요. 그렇게 넒고 푸른 줄 몰랐어요. 그리고 잉글랜드가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것도."
"맞아. 그 때문에 L이 너를 데리고 여기 칼레까지 온 거겠지."
"그런데 웬지 귀가 간지럽네요.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

이런 L의 생각에 상관없이 자리에 앉은 더글라스 맥도날드는 자신이 아델레이드 백작가의 전권대리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꺼내보였고, L은 꼼꼼히 서류를 읽어보며 확인했다.
서로의 확인이 끝나자 L과 더글라스 맥도날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귀하의 목적이 정확히 뭡니까?"
"먼저 서로 거래를 트자는 거지요. 저희도 상단이 있지만 아직 규모가 작아요. 때문에 아델레이드 백작가의 상단처럼 대상단의 유통망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상단의 단장도 고민하던 것이기도 하지요."
"유통망이라... 그래서 저희가 얻는 건요?"
"이 전쟁이 끝난 다음입니다. 그때 우리 용병단이 어떻게될지 모르지만요.
그리고 요크와 랭카스터. 백작가도 예상하고있을테고 전쟁이 끝나면 이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겁니다."
"그러니까 귀하의 미래에 투자하라는 거군요. 그것도 매우 불확실한."
"엄밀히 말하면 투자, 가 맞겠군요. 그렇지만 모든 일이 불확실하지않습니까. 때문에 백작가 입장에서도 나쁘지않을 겁니다."
"지금 전황을 보죠.
부르고뉴 군은 오를레앙에서 버티면서 다른 지역을 공격하는 중이고, 황태자파는 오를레앙을 탈환하려하면서 시농에서 버티고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부르고뉴가 우세하지요."
"그렇죠. 그리고 저희같은 중소 용병단이 이런 전황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압니다."
""성녀(聖女)"의 등장같은 걸 제외하면 말이죠."
"그렇죠. "성녀(聖女)"가 등장하고 이끌면 전황이 달라질 수도 있죠."
지금 이렇게 대답하고있지만 우리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야. 이 양반아. 불과 2년 뿐이었지만 그 영향은 지대했지.
이걸 언급하는 걸 보니 예전의 회의에서 나온 말대로 잉글랜드까지 소문이 흘러갔나보군.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한다면."
"...맞는 말이로군요. "성녀(聖女)"가 존재한다면 이탈리아 교황청이 우선 그 능력을 인정해줘야하니까."
"네, 교황청의 인정과 승인이 필요한 문제죠."
"시농 성의 황태자가 이 전황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봅니까?"
"지금은 출생 문제 때문에 안될겁니다. 그것 때문에 트루아 조약이 맺어졌으니까. 하지만 교황청이 인증한 "성녀(聖女)"같은 존재가 황태자를 정통으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리고 잉글랜드도 사정이 좋지않죠. 전쟁이 길어지는 바람에 내부에서 싸우기 시작하고있다지요."
이 말에 더글라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오를레앙만 함락하면 잘 될겁니다."
"만약 잉글랜드 마음대로 된다고 해도 프랑스 사람들이 잉글랜드의 지배를 인정할 것 같습니까? 노르망디의 기욤(윌리엄)이 자신의 군대와 함께 잉글랜드를 정복했을 때, 당시의 잉글랜드 여러분들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으으음... 확실히 그렇군요. 아주 기분나뻐할 게 분명합니다. 지금도 그렇겠군요."
"당연하죠. 이 전쟁이 끝나도 프랑스 사람들은 잉글랜드를 계속 미워할 수 밖에 없죠. 그렇지만 런던은 전쟁을 너무 낙관하고있고 권력싸움 때문에 전쟁에 지친 프랑스 사람들을 달랠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게 현실입니다." 더글라스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내심 용병단 대장으로만 생각하던 L의 식견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귀하는 부르고뉴와 아르마나크를 지지하지않는 거로군요."
"그런 이유도 있죠. 그렇지만 유능한 행정개혁가와 찌질이 중에서 누가 더 나아보이겠습니까?"

***

"...그래서 그 잉글랜드 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더글라스 맥도날드가 떠난 뒤, 아드리아나가 L의 천막에 와서 조용하게 물었다.
"마지막에 잉글랜드 인은 기뻐하면서 가져온 고급 필사본을 건넸고, 난 개인 창고에 보관해둔 북유럽 귀족의 잔을 썼지만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잘 돌아갔어.
칼레의 임시 상단 사무실에서 나와 상단 단장과 같이 잠정 계약을 맺었으니까."
"잠정 계약이라..."
"그쪽도 그쪽 사정이 있으니까 정식 계약으로 바뀌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잉글랜드도 사정이 좋지못한 건 아드리아나도 알쟎아."
"맞네요... 이렇게 전쟁이 길어질 줄은 예상못했겠죠."
"양쪽 다 처음에는 예상 못했겠지. 때문에 백성들만 고통받는 거고, "성녀(聖女)"같은 구원자가 등장해주길 기대하는 거야."
"하지만 L은 그런 걸 믿지않쟎아요."
"믿지않지. 아드리아나도 마찬가지쟎아."
"그렇죠. 워낙 전장에서 나쁜 꼴을 많이 봐서. 그럼 이제 여기서의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나요?"
"많이 우회하겠지만 오를레앙은 가봐야겠지."
"오를레앙 아니면 부르고뉴인가요?"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만나볼 사람이 있기도 하고."
"만나볼 사람이요? 누구죠?"
"아직 어린아이지만 중요한 사람. 운이 따르면 직접 볼 수도 있겠지."
"행운이 따라야겠네요." 아드리아나의 이 말에 L도 동감이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3화. 칼레(3).

"...그런 이유로 당분간 칼레에 머물게 되었다. 질문있나?" 칼레 외각에 주둔한 "번개" 용병단 주둔지, 수뇌부 회의실에서 L의 말에 크리스티안이 손을 들며 말했다.
"어느 정도까지로 생각하고있습니까?"
"잉글랜드 사정도 있으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 최소한 백작가 상단과 정식 계약이 성립될 때까지는 칼레에 있어달라는 상단의 요청도 있었고."
"상단의 요청까지 있었습니까?"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고 하면 좋군요."
"너무 오래 끌어서 늘어지지않았으면 하지만..."
"그래서 쉬는 동안에도 대원들 훈련은 잊지말고 일정대로 할 것. 하지만 칼레나 주변 도시에 민폐는 끼치지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부대장들이 나갔지만 아드리아나는 남아서 L에게 물어봤다.

"그거 말고 칼레에 머무는 이유가 있죠?"
"며칠 전 상단을 통해 들어온 거야. 부르고뉴의 리니 백작이 우리를 찾는답시고 돌아다니고있다고 하더군."
"만약 리니 백작이 우리를 찾는다면 부르고뉴로 갈 건가요?"
"당장 가지않아. 우리 방침을 알면서." 고개를 끄덕인 아드리아나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오를레앙은 갈 거쟎아요."
"거기는 가야될 곳이니까."
"가야될 곳이라... 그렇겠네요. 아르마나크가 그렇게 공격하고있는데도 버티고있으니."
"이 전쟁의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는데 구경은 해줘야지."
"분기점인가요... 가끔 L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에는 익숙해지지않아요. 그나저나 그 잉글랜드 인은 지금쯤 어디있을까?"
"보나마나 잠정 계약서를 들고 급히 런던으로 가고있겠지."

한편, 다른 천막에서 쟌은 용병단 도서관과 상단 도서관에서 빌려온 필사본 서적으로 공부 중이었는데, 처음에는 공부가 익숙하지않았지만, 조금씩 배워가는 것을 즐거워하고있었다. 상단 일을 할 때에는 판매나 사무 일을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고.
하지만 L과 그가 해주는 이런저런 배려를 해주는 걸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가슴이 뛰는 걸 막을 수 없었는데, 처음 느끼는 이 감정에 쟌은 천사(?)를 만났을 때처럼 약간의 혼란을 느끼고있었다.

"...아드리아나씨에게 물어봐야할까?"

***

"그 용병단이 칼레로 향했다고 했나!?"
그 즈음, 필리프 3세의 명을 받든 리니 백작 쟝 2세(Jean II de Luxembourg-Ligny, 1392 - 1441.01.05)는 소수의 병사들을 이끌고 "번개" 용병단의 흔적을 쫓는 중이었는데 마침 소문을 듣게되어 환호했다.

"네, 몇몇 소문에 따르면 아라스를 거쳐 칼레로 향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녀(聖女)"가 있다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난민들의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고 놀아주었답니다."
"어떤 레이디도 잠시 보호하고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으음... 만약 그 레이디가 잉글랜드 인이라면 칼레로 향한 건 당연하겠지. 그렇지만 "성녀(聖女)" 소문은 신빙성이 있나?"
"그 용병단의 보호를 받았던 난민들이 퍼트린 소문입니다. 때문에 맞는지 안맞는지는 직접 대면해봐야 알겠죠."
"그렇군. 아무래도 그 부분은 확실한 확인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병사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철저하게 주지시키게나.
필리프 3세 공작 전하의 명이네. 만나게되면 일개 용병단이라고 함부로 대하지말고 예의바르게 행동할 것. 공작 전하께서 매우 흥미를 가지시고 계시는 용병단이다. 접촉하게되면 관례대로 전령을 보낸다."
"알겠습니다. 계속 주지시키도록 하지요."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4화. 칼레(4).

그로부터 얼마 뒤, 잉글랜드, 런던 외각의 아델레이드 성城.
아델레이드 백작은 더글라스 맥도날드가 가져온 임시 계약서와 내용을 낱낱이 보고받고있었다.

"...그런 말을 했나?"
"네, 그걸로 미뤄볼 때 확실히 일개 용병단의 대장으로 끝날 사람은 아닙니다. 또한 칼레 밖에 보지못했지만 프랑스 인들의 감정이 어떤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요.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습니다."
"확실히 전쟁을 겪고있는 프랑스 인들의 마음을 달래지못한 건 우리 잉글랜드의 잘못이라고 하겠지. 다름아닌 자기들 땅이 전쟁터인데 말야.
문제는 헨리 6세 폐하가 어직 어린데다 베드포드 공작 존과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의 권력다툼이 웨스트민스터에서 벌어지고있다는 거네. 전쟁이 아직 끝나지않았지만, 모두들 너무 전쟁을 낙관하고있지."
"오를레앙을 계속 사수하거나 파리를 사수해도 문제가 남겠군요."
"여전히 문제는 남게되네. 만약 우리 잉글랜드가 지금 전쟁에서 이겨 프랑스를 정복했다고 치세나. 그럼 현재 잉글랜드의 국력으로 프랑스를 완전히 제압해서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델레이드 백작의 이 말에 더글라스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무리입니다. 우리 잉글랜드는 섬인데 비해 프랑스는 대륙에 있고, 크기에서도 상대가 안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인들이 우리 잉글랜드 인과 통치를 싫어하고있으니까요."
"맞아. 하지만 이 용병단과 상단에 대한 투자, 가 문제로군. 원하는 대로 부르고뉴와 시농에 살짝 연결은 해주겠지만."
"그쪽에서는 정식 계약이 이뤄질 때까지 정기적으로 연락하면서 칼레에서 대기하겠다고 했습니다. "
"다행이로군. 하지만 부르고뉴와 시농에서 그 용병단을 찾고있다네. 특히 부르고뉴는 라니 백작을 동원해서까지 찾고있지."
"그 정도로 관심을 받고있다는 거로군요."
"특히나 시농의 황태자는 급할게야. 목숨과 지위, 권력이 위험하거든."
"무엇보다 런던탑에 갇히고싶어하지않겠죠. 저도 거기는 싫습니다."

...

"이게 지금 현재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상황이다."
"카스티야는 어떻습니까?"
"총신(寵臣) 알바로 데 루나(Alvaro de Luna, 1388 또는 1390 - 1453.06.02)가 돌아왔고, 사촌인 후안 2세(Juan II de Castilla, 1405.03.06 - 1454.07.20)의 비호와 귀족연합과 함께 정적 엔리케(Enrique de Trastamara, 1400 - 1445.06.15)를 몰아내었다고 하더군. 아라곤의 왕자들(Infantes)도 꾸준히 카스티야에 개입하는 모양이고."
"아라곤은 왜 그런 겁니까?"
"예전부터 카스티야와 아라곤은 스페인과 이베리아 반도를 완전히 통일시키고싶어했어. 포르투갈과 나바르 왕국까지 포함해서.
지금 아라곤의 알폰소 5세(Alifonso V d'Aragon, 1396 - 1458.06.27)는 나폴리와 싸우고있고."
"이유, 간단해. 나폴리 왕국의 전임자가 계승 취소를 했거든."
"조반나 2세(Giovanna II di Napoli, 1373.06.25 - 1435.02.02) 여왕 말이군요."
"교황은 둘째치고 자신의 파트너로 선택한 사람이 그렇게 야심이 많은 사람일 줄은 여왕은 몰랐겠지."
"하지만 현재 나폴리 왕국 계승 전쟁은 알폰소 5세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돌아가고있는 중이라고 봐도 되.
때문에 조반나 2세는 계승 취소를 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있을지도 모르지." 이 설명에 모여있는 "번개" 용병단 부대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만약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통합되면 프랑스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될까요?"
"일단 한 국가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국력 차이가 3배나 되고 정치 체제도 너무 다른데... 쉽게 통합이 될까?"
"..." L의 설명에 아드리아나는 물론이고 다른 부대원들까지 고개를 저었다. 이들이 봐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통합은 쉽지않아보였다.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상층부는 일단 왕과 귀족이라도 통합되면 모든게 잘 풀리리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모양이던데..."
"리니 백작 문제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찾아 멀리 부르고뉴부터 온 손님이지않아. 예의를 갖춰서 맞아주도록 해. 어떤 내용인지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들어봐야지.
미리 말해두지만 부르고뉴와 아르마나크 양 편을 지지하지않는 건 변하지않아. 최소한 이 전쟁이 끝날 동안은."
이 말에 모여있는 부대장들은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부대장들이 해산한 뒤에 남은 아드리아나가 L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리니 백작 문제는 어떻게 할 거에요? 상단의 말에 따르면 조만간 칼레에 도착할 거라는데."
"정중하게 맞아줄 거고, 양 편을 들지않겠다고 할 거야."
"하지만 집요하게 물어올 걸요. 그 사람도 상관에게서 명령받은게 있으니까."
"맞아. 하지만 아드리아나, 유능한 행정개혁가와 찌질이 중에서 누가 나아보여?" 잠시 생각해보던 아드리아나가 살짝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하려고요?"
"그럼 리니 백작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다니면?"
"부대장들이 먼저 싫어할 거에요."
"뭐, 귀족이니까 당연하겠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않아?"
"유능해요? 그 백작이 유능하면 모를까 그렇지않으면 인정받지못할 거에요."
"유능하니까 그 필리프 3세가 데리고있겠지. 상업이 발달한 저지대 지역을 통치하는게 쉽지않기도 하고."
"그렇긴 하군요.... L은 그 사람들이 잉글랜드에게 바람을 불어넣지않았으면 이 전쟁이 일어나지않았다고 말했었죠."
"하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 저지대 사람들도 예상은 못했겠지." 고개를 끄덕인 아드리아나는 화제를 돌렸다.
"분명히 예상 밖이었겠죠. 다른 유럽 나라들은 자기 앞가림에 바쁘고."
"특히 이탈리아는 힘들거야. 교황령에 각 도시국가로 나뉘어서."
"그렇지만 L은 베네치아를 눈여겨보고있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중에서 굉장히 독특하거든. 저들의 10인 위원회(Consiglio dei Dieci)도 우리 이야기는 부르고뉴나 시농, 런던처럼 듣고있을테고, 아마 도제(Doge di Venezia) 책상 위에 정중히 올려져있겠지."
"그러고보니 생각이 났는데... 예전에 갔었던 이탈리아로 갈 수도 있었쟎아요?"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정치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잘못하면 우리가 먼저 망할 가능성이 컷어. 그래서 프랑스로 향하는 것에는 아드리아나도 다른 부대장들과 함께 동의했쟎아."
"...그랬었죠. 상단도 이탈리아에 가는 걸 반대하기도 했고. 잉글랜드 백작 쪽은 어때요?"
"알겠지만 예상대로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아. 때문에 상단 단장과도 이야기를 했어.
저쪽에서 무슨 조건을 들고오든 우리의 기본 방침은 변화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 상단에 투자를 해줄까요? L도 우리 용병단과 상단의 미래를 걸고 이런 걸 하는 거지만."
"양날의 칼이라는 거와 우리들의 미래가 불확실한 건 알아. 하지만 전쟁 후를 생각하니까 별 수 없더라구."
"...전쟁 후, 군요..." L의 고민이 이해가 되는 아드리아나였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5화. 칼레(5).

"웬지 기분이 좋아보여요."
"그래, 그동안 골치아팠던 일 하나가 겨우 끝났거든."
훈련 중 쟌의 질문에 아드리아나가 대답했는데, 오늘 아드리아나의 얼굴 표정은 좀 편해보였다. 그래서 쟌이 질문했다.

"무슨 일이었는데요?"
"부르고뉴의 백작 하나가 우리를 찾아 칼레까지 왔고, 백작이 직접 와서 L과 이야기까지 했지. 백작이 돌아간 다음에 L이 설명해줬어.
곧 부대장들 소집이 있을거야."
"저도 그 백작님을 멀리에서 봤는데... 웬지 기분나빴어요."
"쟌에게 첫 인상이 나빴나보지?"
"첫 인상보다도 느낌이 그랬죠. 하지만 L이나 아드리아나씨에게 일이 많네요."
"집단을 이끄니까 그럴 수 밖에 없어. 우리 뿐 아니라 따르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야하니까."
"..." 언젠가 아드리아나가 "번개"에 합류하게 된 이야기를 들은 쟌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보면서 아드리아나는 말을 이었다.
"골치아픈 문제 하나가 끝나도 다른 게 있지. 그것도 잘 풀리면 좋을 텐데."

...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백작님."
"그렇게 보이는가?"/"그렇습니다."
부하들과 함께 부르고뉴 공국으로 향하는 리니 백작의 얼굴은 부하들이 보기에도 일이 잘 되었는지 기분이 좋아보여서 부관이 다시 물었다.
"일이 잘 되신 모양이죠?"
"지금 저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청년은 일개 용병단의 대장으로 끝낼 자가 아닐세. 비록 우리 부르고뉴와 아르마나크를 편들지않는다지만 전황을 정확히 보고있어."
"그럼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겁니까?"
"맞아. 저 용병단도 자기 일이 있으니 지금 당장은 안되고 조만간 움직일게야.
하지만 용병단 안을 슬쩍 봤는데, 뭔가 찝찝한 게 있는 거 같더군."
"그게 뭘까요?"
"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용병단 안에서 이야기 중에도 무언가 그런 기분이 계속 들었고, 끝내고 나올 때까지 유지되었지. 이상하구먼."
"오를레앙은 어떻게 될까요?"
"잉글랜드 인들이 어떻게든 하겠지. 일단 부르고뉴로 가서 공작 전하에게 보고하는게 우선일세."

***

리니 백작이 떠나고 얼마 뒤, 다시 더글라스 맥도날드가 아델레이드 대상단의 계약 조건 문서를 들고 L 앞에 나타났다.
"이게 대상단이 생각하는 계약 조건입니다." 그리고 L은 천천히, 꼼꼼하게 계약 조건을 읽어본 뒤, 대답했다.
"... ..백작님은 우리 상단에 투자하겠지만, 용병단에 대한 투자는 조금 주저하시는 거 같군요. 뭐, 이해는 합니다. 워낙 미래가 불확실하니."
"하지만 백작님께선 귀하의 의견에는 감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것과 우리 용병단에 대한 투자는 별개지요. 저희 상단은 아델레이드 대상단의 유통망을 이용하고자하는 게 목적이니까."
"네, 그렇죠. 그것에는 백작님도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상단 관계자도 그렇구요. 그런데 만약 귀하가 오를레앙을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쪽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6화. 칼레(6).

며칠 뒤, 칼레 외각에 주둔 중인 "번개" 용병단.
대형 회의실 천막에서 L과 아드리아나가 휘하 부대장들에게 설명해주고있었다.

"...따라서 조만간 칼레를 떠나 다시 행군한다."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아직 완전히 정하지않았지만 투르(Tours) 방향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래."
"오를레앙에는 가는 겁니까?" 이 부대장의 말에 L은 슬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갈지도 몰라."

부대장들이 떠난 뒤, 남게된 크리스티안이 L에게 물어봤다.
"질문할 게 있는 거 같은데?"
"지금까지 칼레에 약 반년 이상 있었죠. 그게 잉글랜드 백작과 교섭하는게 목적이었습니까?"
"우리 상단에 투자해달라고 하는거라면 맞아. 때문에 교섭인이 여러 번 오갔지. 백작가의 상단을 통한 유통망을 이용하면 더 나아질 테니까." 이 말에 크리스티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단에 대한 대장의 생각은 알겠습니다. 우리 용병단에 투자하고싶겠지만 뭐, 그런 건 비밀리에 해야겠죠. 오를레앙에도 갈 수 있다는 것도요. 그럼 지금 대장과 아드리아나가 가르치고있는 아가씨는요?"
"잘하고있다고 들었어. 우리들에게 배우는 틈틈이 용병단 음식을 조리해주고, 빨래에, 보호 중인 난민들의 아이 보모, 상단에서 판매와 사무 일까지 본다지? 그 정도면 잘하는 거쟎아."
"...맞는 말이로군요. 저 아가씨는 생활력이 강해서 무슨 일을 해도 다 잘 해낼 겁니다. 저도 가르쳐봤는데, 상당히 이해력이 좋은 아이에요. 동레미같은 곳에 있기 아깝죠.
"성녀(聖女)" 소문이 퍼지는 게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 즈음, 오를레앙 성을 방어 중인 프랑스 군 천막에서는 앙드레 드 로이야크(Andre de Laval-Montmorency, seigneur de Loheac, c. 1408 - 1485) 원수와 쟝 도를레앙(Jean d'Orleans)이 이야기하고있었다.
"이대로라면 전력의 축차손실을 피할 수 없네."
"하지만 오를레앙 성을 방어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군. 하지만 자네도 소문 들었나?"
""성녀(聖女)"가 있다는 용병단 이야기 말입니까? 용병단은 환영이지만 "성녀(聖女)"는 매우 의심스럽군요. 난민들이나 평민들이 꾸며낸 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존재하면 어떻게 할 텐가?"
"교황청이 순순히 인정해줄까요? 시농에 있는 도팽께서 인정해주실지도 의문입니다." 이 말에 로이야크 원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녀(聖女)"가 나와서라도 이 질질끄는 전쟁을 끝내줬으면 하네. 너무 오래 끌고있어."
"도팽께서는 시농에 있는 휘하 전력을 보내시지않고있으시죠."
"두려운 걸세."/"두려워하신다고요?"
"트루아 조약이 어떻게 맺어졌는지 아나? 때문에 도팽은 정통성이 잉글랜드나 부르타뉴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네.
선왕 폐하가 좀 더 오래 살아계셨으면 잉글랜드가 그런 조약을 강요할 수 없었겠지."
로이야크 원수의 한숨이 담긴 말에 도를레앙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1431년 5월 30일, 프랑스의 루앙
백년전쟁의 위기에서 프랑스를 구한 한 소녀는 샤를 7세에게서 버림받으면서까지 자신을 따르는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콩피에뉴(Compiegne)를 탈환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포로로 붙잡혀 잉글랜드와 부르고뉴 파로 구성한 이단재판소에 의해 1년여의 재판 끝에 마녀로 판정되어 루앙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몇 루앙 시민들과 잉글랜드 병사에게서 십자가를 받고 화형대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
"나를 화형대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용서합니다."

이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7화. 시농 성의 우울.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제가...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장면을 계속 보여주시는 겁니까 신神이시여! 왜 이런 장면을 보여주시는 겁니까--!!"
어느 날 아침, 시농 성의 내부의 교회 제단에서 샤를 도팽은 기도와 함께 울부짖고있었고, 샤를 도팽의 이런 행동을 지켜보는 병사들과 궁 관계자들은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전황이 이런데 저런 악몽을 꾸시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너무나 위험하니까 매일 저런 악몽을 꾸시겠죠."
"하지만 정말 "성녀(聖女)"라도 나타나서 전하를 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아직도 그 용병단을 찾을 수 없는가? "성녀(聖女)"를 데리고있다던 용병단 말이다!"
기도가 끝나고 얼마 뒤, 황태자용 옥좌에 앉은 샤를 도팽은 늘어선 대신들을 향해 일갈했지만,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샤를 도팽은 외쳤다.

"이미 부르고뉴 파가 그 용병단과 만났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그 사이에 너희들은 뭐하고있었어? 내가 우습게 보였나보지?" 이 말에 화들짝 놀란 대신들은 급히 얼머무리려 했다.
"아, 아, 아닙니다. 전하. 저희들은 최대한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오를레앙도 제대로 방어하지못하고, 내가 내린 지시도 잘 이행을 못하고있지... 그렇게 내가 만만해보이나?"
"그렇지않습니다. 전하. 저희들은..."
"...최선을 다해서 나를 보필하고있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부디 화를 참으시고..."
"로이야크 원수와 뒤두아 백작이 조만간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더구나 로이야크 원수는 이 전쟁에서 잉글랜드를 고전시킨 뒤 케글랭(Bertrand du Guesclin, 1320 - 1380.7.12)의 검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니..."

***

한편, 잉글랜드의 런던 외각, 아델레이드 성城에서는 아델레이드 백작이 보고자에게서 보고를 듣고있었다.
"...그럼 이미 아라스로 향하고있겠군."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죠. 하지만 그 용병단을 시농도 찾고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농이 찾아도 늦었을게야. 그나저나 시농의 황태자 상태는 어떤가?"
"소문을 들어보니 좀 묘합니다. 언젠가부터 악몽을 꾸게 되었는데, 너무 생생해서인지 잠꼬대를 심하게 하다가..."
"오를레앙이 잘 방어되지않아서 그런 겐가? 묘하구먼. 시간을 들여서라도 좀 더 자세히 알아오게."
"알겠습니다."

칼레에서 아라스로 이동 중인 "번개" 용병단과 상단.
아라스에 도착하면 이들은 투르(Tours)로 방향을 틀 예정이었다. 그 속에서 아드리아나가 L에게 질문했다.

"소문 들었어요?"/"무슨 소문?"
"시농에 있는 샤를 도팽에 대한 소문이요. 몇 개월 전부터 이상한 악몽을 꾼다는 소문이 있어요."
"상단을 통해서 들어온 거겠지?"
"맞아요. 너무 생생한 악몽을 계속 보게되자 점점 증세가 이상해져간다던가..."
"무슨 악몽인데?"
"소문에 따르면 어느 소녀가 이단재판소에 의해 마녀로 판정되어 화형당하는 꿈이라는군요." 살짝 L에게서 이상한 표정이 지나갔지만 아드리아나는 눈치채지못했고, L이 말했다.
"도팽이 그 모양이면 시농도 시끄러워지겠군. 대신들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겠어."
"오를레앙과 부르고뉴도 아마 런던이나 신성로마제국처럼 소문을 들었을 거에요."
"분명히 그쪽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겠지."
"아직도 시농은 우리를 찾는 모양인데... 부르고뉴는 우리를 찾았쟎아요."
"그건 우리가 상단 건으로 칼레에 오래 머물러있었으니까 찾은 거야. 다른 때라면 못찾았어."
"하지만 지금은 "성녀(聖女)" 소문으로 흔적이 더 쉽게 남을테죠."
"쟌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냐고 물을 거지? 크리스티안도 비슷한 질문을 했었으니까." L의 이 대답에 아드리아나는 약간 놀란 표정이 샐쭉하게 바뀌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물으려고 했지만 그만뒀어요. 가끔 L의 생각은 이해못하겠으니까."

Aeneadum genetrix, hominum divomque voluptas,
alma Venus, caeli subter labentia signa
quae mare navigerum, quae terras frugiferentis
concelebras, per te quoniam genus omne animantum
concipitur visitque exortum lumina solis:
te, dea, te fugiunt venti, te nubila caeli
adventumque tuum, tibi suavis daedala tellus
summittit flores, tibi rident aequora ponti
placatumque nitet diffuso lumine caelum.
(인류와 저 위, 신神들의 기쁨이로다.
로마의 어머니, 자애로운 사랑의 여신이여,
그대의 생명력과 공기와 대지, 바다가
굴곡진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낳으리니.
모두를 위해 베푸시는 그대 다산의 힘이여,
솟구쳐올라 보노라, 빛의 영역을.
그대여, 여신이여, 구름과 폭풍우는 그대를 두려워하리니.
기쁨을 주시는 그대 모습 앞에 사라지네.
그대를 위해서 향기로운 꽃들은 땅에서 옷을 차려입고,
그대를 위해서 바다는 미소지으며 그대의 굴곡진 가슴을 매끄럽게 다듬고,
하늘도 더욱 고요히 정갈한 빛으로 축복하나이다.)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8.9 - 1700.5.1) 번역.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8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요한 23세(Antipope John XXIII, Baldassarre Cossa, 1370년경 - 1419.12.22)의 교황청 사무국(Roman Curia)에서 필사가(scriptor)로 일하던 포초 브라촐리니(Poggio Bracchiolini, 1380.02.11 - 1459.10.30)는 갑작스런 요한 23세의 퇴위 후, 인문주의자이자 책 사냥꾼으로 전업하여 1417년, 독일 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잊어버렸던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기원전 약 99 - 55)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를 재발견해 필사하고, 그 필사본은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된다.
이 책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사물은 눈에 보이지않는 작은 입자로 만들어진다.
* 물질을 구성하는 기초 입자인 "사물의 씨앗들"은 영원하다.
* 기본이 되는 입자들은 그 수는 무한하나 형태와 크기에는 제한이 있다.
* 모든 입자는 무한한 진공(Viod)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다.
* 사물은 일탈의 결과로 태어난다.
* 일탈은 자유 의지의 원천이다.
* 자연은 실험을 멈추지않는다.
* 우주는 인간을 위해서, 또는 인간을 중심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 인간은 특별하지않다.
* 인간 사회는 평화롭고 풍부하던 황금시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원시의 전쟁 속에서 시작되었다.
* 영혼은 죽는다.
* 사후세계는 없다.
*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 종교는 일관되게 잔인하다.
* 천사나 악마나 귀신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않는다.
*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 쾌락의 가장 큰 장애물은 고통이 아니라 망상이다.
*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가장 큰 경이로움을 낳는다.

이후 직업을 찾던 포조는 1418년부터 4년간 영국에서 헨리 보퍼트의 비서로 있었고, 1423년에서야 겨우 바티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용하게 필사되고 인쇄되어진 이 책은 당대 카톨릭의 조롱과 반발(* 예로 들면 15세기 사보나롤라와 17세기 예수회.)에도 불구하고 유럽 세계를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끌게 된다.
또한 현대에 와서 일본 라이트 노벨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 잠든다.(少女は書架の海で眠る, A girl sleeps in the ocean of magdala)"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19화. 한편 부르고뉴 공국에서는....

그 즈음, 부르고뉴 공국에서는 필리프 3세가 무시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리니 백작을 치하하며 이야기하고있었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행이오. 백작."
"감사합니다. 각하."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다행이 칼레에서 만났습니다. "성녀(聖女)" 소문도 있어서."
"으음... 칼레였나... 거긴 잉글랜드 땅인데?"
"네, 칼레에서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용병단의 대장과 이야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만나주지않으려고 했습니다만."
"왜 그랬던 건가?"
"우리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 둘 다 지지하지않는다는게 그들 방침이라... 어쩔 수 없이 제가 개인 자격으로 만나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지요." 리니 백작의 말에 필리프 3세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군을 업고있는게 이들의 가장 큰 약점이니까.
"어디 자세히 이야기해보시오."
"네, 그들의 이런 방침 때문에 저는 우리 부르고뉴에 합류하자는 이야기를 감히 꺼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후에 잉글랜드 군을 몰아낼 수 있다면... ...그때, 도와줄 수도 있다고 말하더군요."
"전후... 전후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공작 각하께서 만약 프랑스의 왕을 차지하시게 되면 과연 공국 때처럼 잘할 수 있을지도 묻더군요. 이 나라를 반으로 가른 책임은 도팽과 각하에게도 있다면서."
"... ...아프구만..." 잠시 침묵하던 필리프 3세가 말했고, 리니 백작도 고개를 끄덕인 다음 대답했다.
"듣고있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박할 수 없었으니까요. 때문에 왜 저들이 우리 부르고뉴와 아르마냐크를 편들지않는지 이해하게 되었고요."
"그렇겠지. 그럼 오를레앙 문제는?"
"오를레앙 상황에 달렸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양쪽에게 만족할 답을 줄 수도 있다고..."
"상황에 따라 양쪽에게 만족할 답이라... 애매하구먼."
"네, 듣고있던 저도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지요." 이번에는 필리프 3세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무언가 찜찜한 것이 용병단 안에서 느껴졌죠."
"그게 뭔가? "성녀(聖女)" 소문도 확인해봤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용병단 대장에게 물어봐도 가르쳐주지도 않았구요. 그것보다 왜 각하께서는 저 용병단을 찾으라고 하시겁니까?" 리니 백작의 말에 잠시 필리프 3세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요즘 시농의 도팽이 악몽을 꾼다는 소문은 자네도 들어서 알거야. 사실, 나도 그 꿈을 꾸었다네."
"네에?" 필리프 3세의 말에 리니 백작은 놀란 표정이 되었지만, 필리프 3세는 개의치않고 말했다.
"꿈 속이지만 갑자기 "성녀(聖女)" 또는 "성녀(聖女)"라고 자칭하는 한 소녀가 나타나 도팽의 군대를 이끌고 오를레앙, 파리 등을 탈환하고 도팽을 공식적인 왕으로 인정했네. 그리고 계속 군대를 가지고 도팽에게 승전보를 가져다 주었지만, 결국 도팽은 그녀를 버리고 우리에게 체포되게 했지.
그녀는 우리 부르고뉴와 잉글랜드가 만든 이단재판소에서 마녀로 판정되어 화형당했어."
"..."
"...만약 그 용병단이 우리 휘하가 되면 이런 꿈을 끝낼 수 있을지 궁금했었네."
"그럼 제가 그 용병단 안에서 느낀 찜찜한 기분도 이상한게 아니군요."
"맞아. 그 꿈에서 자네는 "성녀(聖女)" 또는 그렇게 지칭하는 소녀를 붙잡았으니까."
"..." 이번에는 리니 백작이 말문이 막힐 차례였지만,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각하, 각하가 만약 프랑스의 왕이 되면 잘해나갈 자신이 정말 있으신 겁니까?"
"도팽을 몰아내고? 이전까지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이런 꿈까지 본 지금은 의문이 드네." 필리프 3세의 이 말을 듣자 그제서야 리니 백작도 알 것 같다는 표정이 되며 말했다.
"각하가 도팽을 몰아내고 프랑스의 왕이 되셔도 잉글랜드와 싸우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고있어도."
"맞네. 게다가 지금 저들 내부는 우리 못지않게 권력싸움을 하고있지. 하지만 우리는 먼저 이 전쟁을 끝내야 저들, 잉글랜드 인들을 몰아낼 수 있다는 걸 잊지말게.
그때가 되면 그 용병단도 나서주겠지. 그렇게 믿어보세나."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0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어느 날 밤, 동유럽의 어느 오지에 있는 오두막 집에서는 두 젊은 부부가 조용히 응접실에서 이야기하고있었고, 어린 여자아이는 자기 방에서 곤히 자고있었다.
"오늘도 안나마리아가 동네 아이들과 싸웠다나봐요..."
"역시 그 일 때문인가..." 남편의 말에 아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이 말을 이었다.
"그건 비겁자란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가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렇기도 해서 가이가 아니라 당신을 선택한 거고."
"가이,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죠. 하지만 가이보다 L이 더 잘 나가고있을 거라는 건 분명해요."
"아직도 잉글랜드와 전쟁 중인 프랑스에 "성녀(聖女)" 소문이 있는 거 알고있지?"
"잘 알고있죠. 마을에서도 수군거리던데. 그 "성녀(聖女)"가 있는 용병단이 아마 L이 만든 용병단일지도 몰라요."
"예전의 우리가 보기에도 L은 그저 용병으로 끝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전쟁이 끝나면 더 큰일을 할지도 몰라."
"그럼 결정되었군요. 안나마리아가 더 자라면 당신이 기초적인 검술을 가르쳐 주고 L이 만든 용병단이나 나라로 보내죠.
여기는 안나마리아에게 너무 좁아요. 거기에서 안나마리아가 더 크게 될테니까."
"...그 말이 맞아. 여기는 안나마리아에게 너무 좁은 곳이지. 저 아이는 예전의 우리처럼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볼 필요가 있어."

***

"...그래서 지금 L의 예전 동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투르 방면으로 이동 중인 "번개" 용병단 속에서 아드리아나가 L에게 물어봤다.
"그거, 아드리아나 쪽이야 아니면 쟌이 물어본 거야?"
"둘 다라고 해두죠."
"좋아. 뭐, 그때 용병단을 해체하고 둘은 유럽의 어느 오지로 숨은 거같다고 이야기했지. 지금이라면 아이가 한둘있어도 이상하지않겠어."
"지금 L의 이야기를 그 사람들도 들었을텐데요."
"들어도 나와 얼굴을 마주하기 쉽지않을테지..." L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만약 그 사람들의 자녀가 오면 어떻게 할래요?"
"받아들여주는게 순리가 아닐까. 이유가 있으니까 나에게 맡기는 거겠지. 그러다보면 자기 재능을 찾을 수도 있을거고.
그때가 되면 아드리아나와 쟌이 그 아이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노력은 해보죠."
"그건 고마운 말이군. 그리고 쟌의 진도는?"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고있어서 빠르게 나가고있는 중이죠. 조만간 한 부대를 지휘할 레벨이 될 거에요."
"그 조만간이 언제일까?"
"빠르면 1- 2년, 늦어도 그 이상은 걸리지않을 거 같아요. 이건 크리스티안이나 다른 부대장들도 인정한 거."
"이제 조금만 가면 오를레앙이야."
"그렇다고 오를레앙 전투에 끼어들 생각은 아니죠?"
"우리 방침도 있고 리니 백작과 이야기한 게 있으니까 생각 중이라고 해두지."
"생각 중이라... 그렇지만 생각하고있을 거 아니에요?"
"아무리 아드리아나 앞이라도 지금 당장 말할 생각은 없어."
"어련하겠어요. 대장이시니까."
"언젠가 아드리아나가 이런 위치까지 오르게 되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는지 어느 정도 알게될 거야."
"그럴 날이 오기나 할까요?" 비꼬는 듯한 아드리아나의 말은 이번에는 푸념하는 어조가 되어버렸고, 이에 L은 살짝 아드리아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로드나 백작도 아드리아나를 인정할 날이 올거야. 그런 희망을 살짝이라도 품는게 나아."
"희망고문하지말아요." 샐쭉한 표정을 지은 아드리아나의 이런 말에 L은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상단 쪽은 어때?"
"계약대로 아델레이드 대상단의 유통망과 연결되면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고있다고 해요. 덕분에 이쪽의 보급도 조금씩 좋아지고있죠."
"다행이군.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게되면 상단이 할 일이 많아지지."
"지금도 먹고살기 힘든데 전후라...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미리 생각해두지않으면 나중에 힘들어. 이 전쟁이 끝나게 되면 아드리아나도 알게될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1화. 오를레앙으로 가는 길(1).

"단장님 표정이 며칠 전부터 심각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어느 날, 이동 중에 쟌이 아드리아나에게 물어봤고, 아드리아나는 적어도 용병단의 기본적인 움직임 정도는 쟌에게 가르쳐줘도 괜찮다고 이전에 L에게 들었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쟌에게 대답해줬다.
"우리들의 미래 문제 때문이야."
"미래 문제인가요...."
아드리아나의 대답에 쟌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쟌도 곁에서 L과 아드리아나를 비롯한 용병단의 주요 멤버들이 이런저런 주제로 회의하는 걸 어깨 너머로 들었지만, 미래 문제까지 거론되었다는 말에 놀랄만도 했다. 그런 쟌을 보면서 아드리아나가 말했다.
"이미 쟌도 알고있겠지만 우리는 오를레앙으로 향하고있어."
"짐작은 헀지만... 그렇군요. 하지만 이게 왜 미래 문제로 연결되나요?"
"우리 용병단의 방침은 알고있지? 부르고뉴와 도팽 양쪽을 편들지않는 것. 하지만 전장과 전화(戰火)에 말려드는 사람들은 최대한 구조하는 것."
"네, 그래서 용병단을 따르는 피난민들도 꽤 많고, 일부는 용병단과 같이 움직이는 상단에 소속되었죠. 단장님이 상단을 만드신 건 그런 목적도 있었지요."
"맞았어. 하지만 나도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
"그런데 왜 오를레앙인가요?" 쟌의 질문에 아드리아나는 며칠 전에 L과 나눈 대화를 떠올려봤다.

...

"...어떤 의미에서 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 우리 미래 문제도 걸려있고." 이 말 뜻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아드리아나는 하나씩 물어보았다.
"먼저 양쪽 편을 안들겠다는 방침은 여전히 유효한 거죠?"
"그건 유효해."/"그럼 하필이면 왜 오를레앙이죠?"
"중요한 곳이니까."
"오를레앙에 부르고뉴 파가 목숨걸다시피 하면서 공격하고있지만 뚫리고있지않죠."
"거기가 뚫리면 아르마냐크 파는 위험해지지. 파리가 코앞이거든."
"그렇죠. 왜 우리 미래가 걸려있고 쟌이 끼어드는 거에요?"
"그 광경을 보고 끼어들고싶어할까봐. 게다가 성녀(聖女) 소문이 나고있지." 물론 아드리아나 자신도 개인적으로는 카톨릭을 믿는지라 성녀(聖女)의 의미를 너무 잘 알고있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쟌이라면 함부로 끼어들지않을 것 같았다.
"쟌은 영리한 아이니까 끼고 빠질 때를 알고있어요."
"맞는 말이지만 실제 광경을 보게되면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때에는 아드리아나가 막아줬으면 하는데." 이 말에 아드리아나는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갑자기 L이 미래 문제를 언급했는지 알게되었다.
"만약 쟌이 오를레앙 공성전 광경을 멀리서라도 보고 뛰어들게되면 성녀(聖女) 소문도 있고해서 막지못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우리도 말려들어가는 거고."
"맞았어. 때문에 그런 때가 오면 쟌을 기절시켜서라도 뛰어들지못하게 해야 해."

...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되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을 빼고 설명해주는 아드리아나에게 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이야기로 바꿀까?"
"네, 프랑스로 오기 전에 유럽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들었어요."
"응, 한때지만 리투아니아와 루스 공국 주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일대, 어느 때는 비잔틴, 투르크와 이탈리아 북부 등을 오갔었지." 이에 쟌의 얼굴에서 "우와!"라는 작은 환호와 함께 놀랍다는 표정이 일어났고 말을 이었다.
"소문이지만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후스파들이...."
"맞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꼴을 본 L이 나중에 "이게 무슨 짓거리야!"라며 좀 화냈었지. 나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알 것 같아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있는 후스파 건에 L과 용병단의 다른 사람들이 좀 화가 났었다는 이야기는 쟌도 충분히 이해가 갔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즈음, 프랑스의 어느 곳에 있는 요크 공작의 진지.
요크 공작의 막사가 있는 곳에는 마침 회의가 끝났는지 로드 아델레이드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썬더 용병단은 지금 어디있다고 들었소?"
"칼레에 몇 개월은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호오...." 로드 아델레이드의 이 말에 요크 공작은 흥미있어하는 표정이 되었고, 그것을 본 로드 아델레이드는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칼레는 본국과 프랑스를 잇는 통로아닙니까? 할 일이 있었겠지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썬더 용병단이 오를레앙으로 갈 것 같소?" 로드 아델레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요크 공작이 말했다.
"아무래도 중요 지역이니 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전에 우리들과 이야기한 것처럼 개입은 하지않을게 분명합니다."
"부디 그래줬으면 좋겠소만."
"저도 동감입니다. 비록 중소규모지만 썬더 용병단같은 경우는 다르기 때문이죠."
"로드도 그때 연회장에 있어서 알겠지만 용병단 단장의 눈을 기억하오?"
"네, 확실히 보통 사람과 다른 눈이었지요. 마치 우리가 모르는 깊은 심연을 품고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소. 과연 이 용병단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이 말에 잠시 두 사람은 생각에 잠겼다가 로드 아델레이드가 말했다.
"존 맨드빌 경(Sir John Mandeville, ? - 1372.11.12 또는 11.17?)의 여행기(The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는 읽어보셨습니까?"
"당연히 베스트셀러여서 읽어봤지. 흥미있는게 많더군. 로드는 어떻소?"
"저희도 당연히 읽어봤지만 흥미로운 것이 많습니다. 특히나 동방 쪽은요."
"맞는 말이네. 특히나 썬더 용병단은 튀르크 쪽도 갔었다니까 그쪽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있을테고."

***

그로부터 얼마 뒤, 아버지가 주신 집안의 가보라는 검과 약간의 돈, 옷과 물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난 안나마리아는 아버지가 말해준 또네르 용병단의 흔적을 쫓아 프랑스로 향하고있었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아버지가 매우 칭찬하듯이 말했던 L이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아니, 그 전에 안나마리아는 무사히 프랑스에 도착할 수 있을까?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2화. 오를레앙으로 가는 길(2).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
성의 어느 조용한 곳에서 필리프 3세는 공국의 최고 재상 니콜라 롤랭(Nicolas Rolin, 1376 -1462)과 둘이서 최근의 화제로 이야기하고있었는데, 니콜라 롤랭은 평민 출신으로 공국의 최고 재상까지 올라간, 자수성가한 인물이었지만, 적이 많았다.

"자네도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알고있겠지?"
"네, 리니 백작을 통해 "성녀(聖女)"가 있다는 그 용병단과 접촉했고, 백작은 그런대로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다만..."
"...칼레에서 만났다는게 걸리는게지?"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칼레는 잉글랜드의 영역이죠. 무슨 꿍꿍이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중소용병단이고 이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어. 일단은 지켜보겠다고 했지."
"폐하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용병단은 "성녀(聖女)"가 있다는 것 외에 피난민들이 매우 따르고있고, 이들이 오를레앙에 나타나면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겁니다." 오를레앙이 언급되자 필리프 3세도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렇군, 오를레앙이 있었어.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나?"
"아르마냐크 군대는 계속 오를레앙을 공격하고있지만 잘 막아내고있습니다."
"저쪽의 대장은 앙드레 드 로이야크(Andre de Laval-Montmorency, seigneur de Loheac, c. 1408 - 1485) 원수였지?"
"하지만 그 로이야크도 아직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건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지." 이 말에 니콜라 롤랭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쯤 시농 성은 매우 암울할 겁니다."
"암울하겠지. 오를레앙이 함락되지않는데다 전황도 지지부진하니까."

한편 투르, 시농 성.

"너희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성녀(聖女)"가 있는 용병단을 찾으랬더니 찾지도 못하고!" 신하에게서 보고를 받은 샤를 도팽은 대노하며 날뛰고있었고, 신하들은 그런 샤를 도팽의 분노를 뒤집어쓰지않기 위해서 조용히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오를레앙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용병단이 있었다면 공격이 더 편했을 거다. 간신히 흔적을 찾아 칼레까지 갔더니 이미 그들은 철수하고 다른 곳으로 갔댔지.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내었나?"
"아직 모릅니다."
"모른다면 찾아내야지! 비록 그들은 작은 용병단이지만 오를레앙 방어에 큰 힘이 될게야."
"맞는 말씀이지만 그들이 잠시 칼레에 있었다는 게 걸립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은 잉글랜드의 영역이지요."
"그거야 그들대로의 사정이 있기 때문아닌가?" 한 신하의 말에 다른 신하가 끼어들었다.
"그들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웬지 수상합니다. 잉글랜드와 내통하는게 아닌가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만약 저들이 잉글랜드와 내통한다고 해도, 이 시국에 많은 피난민들이 그 용병단을 따르는게 뭐라고 생각하오?"
"조사해보니 그 용병단은 유별나게 상단을 데리고다닌다더군. 상단이 있으니 칼레에 잠시 머무는게 당연한 거 아니오?"
섣불리 말을 꺼낸 신하는 다른 신하들의 공격에 제대로 대꾸를 하지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며 물러나야했고, 이에 샤를 도팽은 화가 더 치밀 수 밖에 없었지만, 명령을 내려야했다.

"로이야크 원수에게 어떻게든 오를레앙을 제압하라고 하고, 그 또네르 용병단을 찾아내도록 하시오."
"하지만 칼레에 잠시 있었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 찾습니까?"
"오를레앙은 그들에게도 흥미있는 장소일테지. 한 번 그쪽으로 보내보는 건 어떻습니까?"
"만약 그들이 나타나지않으면 어떻게 할렵니까?"
"시도라도 해보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낫지. 비록 중소용병단이지만 폐하의 말씀대로 오를레앙 방어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이대로 있다가는 오를레앙 방어는 물론 다른 것도 안될 겁니다."
이 신하의 말에 샤를 도팽은 물론 다른 신하들도 동의했고, 결국 오를레앙과 그 주변으로 한 번 더 보내보기로 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3화. 오를레앙으로 가는 길(3).

어느 우주를 항행하는 거대한 우주선.
이 우주선 안에 대형 중소도시가 있었는데, 이 도시의 중심 관청에 있는 어느 회의실에서 매우 심각한 주제로 회의가 벌어지고있었다.

"....그러니까 이제서야 안거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차원이동 중에 함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지않습니까. 게다가 언제 이동이 시작되는지 알 수도 없고요."
"언제 이동이 시작되는지 모를 뿐 아니라 어느 시간대에 떨어졌는지 불확실할 때가 많지.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
"정확히 말해서 시험용 보디입니다. 22세기부터 실험된 인간처럼 노쇠할 수 있지만 지연이 늦고, 재생력, 면역력, 힘 등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형태의 생물학적 몸이지요. 다행이 다른 예비용 보디로 대체한 덕에 문제는 없지만 이미 테스트를 위해 정신이 업로드된 그 시험용 보디가 어느 시간선의 어느 행성에 떨어졌는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만약 알게되면 구조하는 건 가능한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성 사람들을 놀래키는 건 불가피하지요.
잘못하면 프라임 디텍티브(Prime Directive)를 어길 수 있습니다."
프라임 디텍티브가 언급되자 회의실의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침묵이 지나고나서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어느 시간대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행성에서 대체역사가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없나?"
"그 분이 생존하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봅니다. 게다가 저희가 당장 구조할 수 없지않습니까?"
"당장 우리만 해도 시간대를 이동할 때마다 그 분의 도움을 빌어야하는 때가 많고, 다행이 예비용 보디도 여러 벌 갖추시고있지."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입니다."
"지금 당장은 그 분의 행운을 빌어줄 수 밖에 없겠군. 어느 시간대에 있으시건."
의장의 말에 회의실의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

"이제 조금있으면 오를레앙입니다."
"문제되는 것은?"
"주변의 적군을 찾으신다면 없습니다. 지금의 이동 속도라면 며칠 안에 도착합니다."
"좋아. 그럼 정찰병들은 잠시 휴식." L의 지시에 주변을 정찰했던 일단의 정찰병들은 물러났고, 그제서야 아드리아나가 물어봤다.
"문제되는 것이 없다는게 다행이군요."
"맞아. 알겠지만 오를레앙은 양쪽에게도 중요해. 교통의 요지니까."
L의 말에 아드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현대의 지도를 보면 오를레앙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길이 크게 네 군데가 있고, 한국의 천안처럼 교통의 요지다.
때문에 백년전쟁에서 부르고뉴 파와 아르마냐크 파는 오를레앙을 서로 공략하고 수성하는데 크게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럼 예정대로인 건가요?"
"예정대로. 양쪽을 볼 수 있는 비교적 높은 위치에 진을 치는 거야. 모두에게 그렇게 알리도록 해."
"알았어요." 아드리아나가 물러나자 그제서야 L은 웬지 귀가 간지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가까운 쪽에 있던 쟌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하나보지. 우리를 찾는 곳이 많다는 건 알고있지만."
"....그렇겠네요." 쟌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 말했다.
"끼어드실 건 아닌 거네요."
"이미 말해줬지만 양쪽을 편들기 싫으니까."
"그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으신 거죠? 설마 누군가 마음에 안든다던가...."
"마음에 안드는 사실이나 사람이 없으면 거짓말이지. 일단 여기서는 장將이니까 참아넘기고있지만, 나라를 운영하는 건 또 다른 거고."
"비슷하지않아요?"
"아니, 한 조직을 운영하는 것과 국가를 운영하는 건 전혀 다른 거야. 그런데 이걸 순진하게 생각하거나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능력과 본래 인격에서 차이가 나는 사람들도 많이있거든. 그런데서 난 운이 좋다고 할까... 다행스럽게도 눈앞에 본보기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분이 두 사람이나 있었어."
"많이 가르쳐주셨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쟌이 말했다. 가벼운 한숨도 곁들이면서.
"여러가지로."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4화. 오를레앙(전편).

1429년 4월 30일경, 오를레앙 인근.
드디어 또네르 용병단은 오를레앙 성을 볼 수 있는 근처에 진을 쳤고, 대장 막사에서는 L과 아드리아나, 부대장들이 모여 향후 일정에 대한 회의를 끝냈다.
그리고 내내 L이 혼자서 결재해야할 각종 서류와 씨름하고있을 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식사하세요.” 먹을 걸 싸 들고 온 쟌이었고, 쟌은 끙끙대면서 음식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고마워.”
쟌이 가져온 바게트를 잘라준 뒤, 물잔을 가져와 한 잔 마신 L은 그녀에게 권하자, 쟌은 잠시 당혹스러워 했지만 잔을 가지고 받아마셨다.

"오늘따라 날이 흐리군. 비가 오려고 그러나.”
L은 그렇게 그렇게 말하고는 쟌이 가져온 수프를 마셨다.
원래 수프는 차게 식으면 맛이 없는 법이지만 온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남은 것을 치운 뒤, 쟌이 L에게 물었다.

"오를레앙이군요."/"맞아."
"이미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끼어들지않으신다구요."
"잠시 양쪽을 지켜보다가 파리로 향할 거야."
"파리, 군요...." 파리라는 말이 L에게서 나오자 쟌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쟌을 보고 L이 말했다.
"쟌이 공격군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거지?"
"한밤 중에 배를 타고 성으로 잡입합니다." 이 말에 L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에서 오를레앙으로 온 쟌이 행한 것이었으니까.
"많이 늘었는데."
"여러분들이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었으니까요." 겸손하게 말하는 쟌. 하지만 쟌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있었다. 그런 쟌을 보고 L은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럼 우리와 같이 프랑스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이 있지."
"많이요. 마을에 있었으면 모를 것들이 많았죠.
예전에 후스파들이 싸우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도 갔었다고 들었어요. 어렵게 생각할 것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진작에 그랬으면 잉글랜드의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c. - 1384)도 개혁을 생각할 마음이 없었고, 얀 후스(Jan Hus, 1372? - 1415.07.06)도 로마까지 가서 죽을 필요가 없었지."
"교황님들이 문제인 건가요?" 놀라는 쟌.
"전부 다. 애초에 피핀(Pepin le Bref, 714- 768.01.28)이 교황령을 만들어주지않았으면 좋았을 걸.
교황령이 생긴 뒤부터 교황과 성직자들이 세속에 욕심을 내고 신성로마제국과 계속 부딪치면서 이탈리아에도 우리 프랑스에도 문제가 생기거든."
"그래서 양 편을 안드시는 거군요. 진실을 말하면 때때로 교수형에 쳐해지니까."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쟌은 왜 이 전쟁에 끼어들려고 하지? 보았겠지만 전쟁은 매우 끔찍하고 젊은이들의 목숨을 요구해."
“두렵지 않아요... 저는 이것을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떻게 할 거야? 전쟁을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날 거야?"
"...그렇게까지는 아니에요. 부모님과 함께 가능한 평범하게 살려고 합니다."
"쟌은 그렇게 원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안놔둘거야."
"그렇지만 스스로 굴복하고 믿음없이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해요. - 젊어서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이죠."
"거기까지는 인정해줄게. 하지만 믿음없이 사는 것도 좋을 수 있어."
"네?" 이 말에 쟌은 정말 놀란 표정이 되었고 되묻지못했다.
"신神이란 것이 부과하는 감시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
자칭 경건하다고 하는 신자들은 불신자들이 누리는 자유로움을 두려워하면서도 부러워해. 자기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불신자들을 미워하지."
"하지만 신부님들은...."
"모든 걸 안다고 잘난 척하는 신부들? 그건 자신이 모른다고 증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면서도 돈과 권력은 세속인 못지않게 밝히지.
그리고 세속은 그런 놈들을 토사구팽할 때까지 쓸모있다고 받아주고. 게다가 신부들을 따르는 신도들은 어떻고? 신부들이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있쟎아.
진짜 기독교를 보여주면 된다고? 그럼 진짜 기독교가 뭘까? 예수의 말을 따라 진짜 기독교를 실천하는 자들은 극히 소수이고 다수인 자기들은 진짜 기독교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거기에 붙어서 목숨을 연명하며 부패해가는 자들인데."
이번에는 쟌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 용병단을 따라가면서 보고 들은 것이 있었고, 예전이라면 의심없이 받아들였을 것이었으니까.

"그럼 파리로 가나요?"
"이왕 오를레앙에 왔으니 만나볼 사람이 있어."

만약 우리가 뭔가를 입증해보여준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오류를 떨쳐내게 된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그 뭔가를 입증하는데 성공하지못했을 때, 과연 그 사람이 자신의 오류를 고집할 것인지는 궁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옳다는 인상을 가지고있기에 그리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담화록(Discourses), 에피테토스(Epictetus, c, 55~ c.135)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5화. 오를레앙(후편).

며칠 후, 깊은 어느 밤, 오를레앙 성을 방어하는 아르마냐크 파의 로이야크 원수의 막사.
로이야크 원수는 계속 오를레앙 성을 방어하고있었지만, 잉글랜드의 공세가 아직 격렬해 고민하고있었다. 그러던 때에 어느 병사가 갑자기 면회를 신청했다. 원수는 의아해했지만, 그 병사를 들어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급한가?" 로이야크 원수가 그 병사를 향해 묻자, 그 병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드디어 만나게되는군요. 존경하는 원수 각하를 만나게 위해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네르 용병단의 단장 L이라고 합니다."
병사가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로이야크도 정신이 번쩍 들 수 밖에 없었다. 시농 성의 도팽이나 부르고뉴 공국, 잉글랜드도 이 용병단에 대해 듣고있었고, 자신도 듣고있었으니까.
그래서 로이야크 원수도 놀라면서도 자리를 앉으라고 권했지만, L은 선 채로 말했다.

"아뇨, 지금은 앉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요."
"만나고싶었다네. 나도 자네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도팽 전하께서도 자네들을 찾으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군."
"그렇군요. 오를레앙 성 방어 이야기는 알고있었지만 예상 이상이더군요."
"잘 봤네. 자네들이라면 이 성을 더 잘 방어할 수 있을텐데....."
"뭐, 방법은 있지만.... 그건 스스로 찾아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이 말에 로이야크 원수는 살짝 실망한 표정을 숨기고 다시 물었다.
"이렇게 찾아온 건 무슨 일인가? 그저 날 보러온 건 아닐테고..."
"아시겠지만 원수 각하의 미래 문제죠. 오를레앙 성 방어 문제에 대해 시농 성이 가만히 두고볼 것 같습니까?
도팽과 신하들은 참지못하고 원수 각하에게 이것저것 간섭해올테지요."
"...그렇군. 하지만 난 도팽 전하의 신하라네." 일리있는 로이야크의 말에 L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압니다. 방금 말했듯이 도팽과 신하들이 이런 전황을 참지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따르실 겁니까?"
"...따를 수 밖에 없네."
"이해합니다. 그게 군인이니까요. 하지만 도팽에게 실망하시게 되면 저희들에게 오실 수 있겠습니까? 원수 각하의 능력이 필요해서요."
"내가 자네들에게 필요할까? 그리고 어떻게 자네들을 찾나?"
"원수 각하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희를 찾으실 수 있는 건.... 아마 전후가 되겠군요. 나르본에서 기다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남부로군. 거기도 전쟁의 여파로 엉망이 되었다고 들었지. 거기에 자네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도팽이 오를레앙 건으로 각하를 해임하시면 그쪽에 미리 가족들과 믿을 수 있는 부하들과 함께 내려와계시면 됩니다. 핑계는 많지요.
그리고 이 대화는..."
"....당연히 도팽과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이지. 잘 알겠네."

***

"이렇게 떠난다니 아쉽네요." 다시 며칠 후, 진지를 풀고 오를레앙을 떠나 이동하는 용병단 안에서 쟌은 한숨을 쉬며 아드리아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L은 안도하던데. 일이 제대로 된 모양이야."
"크리스티안 씨와 함께 무슨 일을 꾸몄던 걸까요?"
"글쎄, 나에게도 이번 일은 안 알려주던데. 뭐, 언젠가는 알게되겠지."
"언젠가는.... 이군요."

"쟌이 실망한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어. 오를레앙은 당분간 저대로 둬야지."
"만약 대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 겁니까?"
"쟌이 말한대로 공격해서 뚫었을거야. 샤를 쪽이었다면. 반대편이면 강을 포함해 방어에 집중했겠지." 이에 크리스티안도 고개를 끄덕였고, 말을 이었다.
"로이야크 원수를 만나신 건 무슨 계획이 있어서겠지요?"
"로이야크 원수의 경험이 필요해. 앞으로의 계획에서."
"대장도 충분히 능력은 있쟎아요."
"그렇지만 로이야크 원수는 우리보다 더 오랜 전장과 궁정 경험이 있고, 그때문에 원수가 필요한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만 원수 각하가 대장의 말에 설득되는 건 예상 외였겠죠?"
"확실히 예상 외였지. 정석적인 군주와 신하의 예를 들어 거부할 줄 알았거든. 하지만 그걸로 미뤄보건데 예상 외로 시농의 분위기가 매우 나쁘다고 추측할 수 있었지."
"오를레앙 성 방어의 영향이군요."
"맞아. 그렇다면 언제까지 시농 성이 참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하고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데."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6화. 파리로 향하는 길.

오를레앙- 파리의 어딘가.
이동 중에 백년전쟁의 여파로 사망한 여러 시신들을 도로변에 겨우 묻어주고 명복을 비는 번개 용병단 사람들 중에는 카톨릭 방식으로 명복을 비는 쟌과 함께 정교회 방식으로 명복을 비는 어느 사제가 있었는데 이 사제는 올루바콜라(Олувабукола, Oluwabukola) 정교회 견습 사제(Аколийт, Acolyte)로 용병단이 동유럽을 전전했을 때부터 따라온 고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잠시 뒤, 번개 용병단은 어느 도로 바깥에서 노숙하기로 했고 바로 주둔지가 펼쳐졌다.

"견습 사제, 수고했어."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들어있는 작은 이콘 밖에 없는 올루바콜라 견습 사제의 막사에 들어온 L이 견습 사제에게 말하자 견습 사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저들도 무사히 주님의 곁으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라도 해줄 수 있는게 그나마 다행이지. 이런 시국에는."
"여러분과 함께 프랑스로 들어오는 중에 이런저런 일을 겪었긴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분명히 견습 사제는..."
"네, 알다시피 진흙 화산과 불타지않는 불이 있고 기독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나라들 중 하나 출신이죠.
이걸 말했을 때, 쟌이라는 아가씨는 많이 놀라는 표정이었지요."
"분명히 놀랄만했겠지. 그리고 지금은 많이 친해졌겠지?"
"카톨릭과 정교회의 차이를 비롯해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정도로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만, 면죄부 판매는 저희 정교회가 알게되면 질색할 겁니다."
"분명히 콘스탄티노플은 질색하겠지. 더구나 이게 재정모금비용이라면 더더욱 더."
"로마 교황령이군요."
"맞았어. 알겠지만 그것도 주로 로마 시내와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The Papal Basilica of Saint Peter in the Vatican)의 재건축 비용으로 들어가는 거지." 이 말에 올루바콜라 견습 사제는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
"기가 막히군요."
"물론이지. 교황청이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조만간 이것이 큰 문제가 될 걸 아는데도 교황청은 재건축비용 때문에 계속하는 거야. 이것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 신성로마제국 지역이 부글거린다는 건 사제도 알고있을 거고."
"압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지나가면서 봤으니까요. 대장님은 언제 폭팔할 걸로 보십니까?"
"빠르면 80여년 후일까.... 지금은 모두 면죄부 판매에 의심하지않겠지만."
"이전부터 그랬을 터인데 지금으로부터 80여년 후면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그 정도로 깨닫는게 오래 걸렸다는 거지. 신성로마제국의 한 사제가 분노해서 반박문을 붙이기 전까지는." 이 말에 살짝 고민하던 올루바콜라 견습 사제는 화제를 바꾸었다.
"쟌 이야기하니까 생각났는데 "성녀(聖女)" 소문은 알고있을 겁니다. 지금쯤이면 아마 유럽 전역으로 퍼졌겠지요."

"처음 견습 사제를 만났을 때, 놀랐지?" 다른 막사에서는 아드리아나와 쟌이 이야기하고있었다.
"네, 정교회의 사제님이라니... 게다가 기독교를 제일 먼저 받아들이면서 진흙 화산과 불타지않는 불이 있다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에 놀랐어요.
언제부터 따라오신 거에요?"
"동유럽과 튀르크 쪽을 진전하고있을 때 만났어. 우리를 만나고 좀 더 넒은 세계를 보고싶다면서 그쪽 교구 신부님에게 허락을 받고 따라왔지. 그 이후부터 쭉 함께 따라다니면서 행동하고있어. L은 올루바콜라에게 튀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말했었고, 견습 사제도 따라줘서 이렇게 함께 있는거야."
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견습 사제님을 통해서 정교회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어요."
"그렇지. 하지만 지금 콘스탄티노플은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있어. 튀르크가 문 앞까지 왔으니까."
"하지만 왜 기독교 국가들은 단합할 수 없는 거죠?"
"교황청과 신성로마제국의 계속되는 갈등 때문이라고 L은 생각하고있지. 그리고 이것에는 우리도 동의하고있고." 이에 쟌은 오를레앙에서 L과 한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예전에 올루바콜라 견습 사제와 이야기한 것도.
그때 올루바콜라 견습 사제가 있는 작은 막사에서 류트(lute) 소리가 흘러나왔고, 이 류트 소리는 행군에 지친 또네르 용병단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다.

***

한편 시농 성.
신하들에게서 보고를 들은 샤를 도팽은 분노를 토해내고있었다.

"뭐시라? 그렇게 기다렸는데도 그 또네르 용병단을 놓쳐?"
"네, 저희가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자리를 떴었고, 로이야크 원수께서 소식을 들으시더니 조금 늦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X할 것들.... XXXX, XXXX, XXXX" 옥좌에서 도팽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있었고, 신하들은 송구스러움을 느껴서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서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교환했다. 이어서 극대노한 도팽의 말이 쏟아져나왔다.
"너희들 모두 날 속이고있지? 전부 부르고뉴 공국과 잉글랜드와 짜고있으면서 날 속이고있는 것 아니냐고-!!!"
"아, 아닙니다 전하. 저희는 전하의 명령대로 했습니다만...."
"그럼 왜 그 용병단을 찾지못하는 거냐? 왜 이번에도 며칠 차로 놓쳐?"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지? 내 능력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지원이 부족한 건가? 뭔가?
....좋아. 이놈도 저놈도 안되겠으면..."
결국 화를 참지못한 샤를 도팽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남은 신하들은 샤를 도팽의 상태에 웅성거리고있었다.

"어허~ 결국 이렇게 되었군....."
""성녀(聖女)" 소문이 있는 그 용병단을 제때 만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게요."
"하지만 "성녀(聖女)"가 있는지도 확실하지않지요. 우선 교황청의 허가가 있어야하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성녀(聖女)"가 황태자 전하 편에 있다는 걸로도 오를레앙 방어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더 쉬워졌을게요."
"게다가 매일 일어나셔서 아침기도하실 때마다 꾸시는 꿈때문에 울부짖고 계시다고 하지않습니까? 이게 부르고뉴 공국까지 흘러들어갔다면 더 문제가 커질 겁니다."
"어떻게든 그 소문은 막고있소?"
"최소한 시농 성 밖으로 흘러나가지않게 하고있습니다만.... 로이야크 원수가 송환되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겠죠."
"이제 망명 밖에 답이 없는가..."
"그럼 부르고뉴 놈들이 오기 전에 망명한다고 치고 어디로 망명할 예정이시오? 모나코? 스페인의 카스티야나 아라곤? 신성로마제국? 교황청이나 베네치아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그리스나 튀르크? 북아프리카?"
망명예상지역이 하나씩 언급될 때마다 신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나같이 프랑스에 적대적인 국가이거나 가상적국들인대다 망명하게되면 고생이 눈에 훤했기 때문에 모두 선뜻 대답하기 주저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7화. 파리.

1429년 5월 초- 중순.
드디어 또네르 용병단은 상단과 함께 파리에 도착했고, 상단으로서 파리 외각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여기가 프랑스를 통치하는 중심지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평민복 차림으로 오뗄생폴(Hotel Saint-Pol) 성 앞에 선 L의 말에 같이 온 아드리아나와 쟌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와있는 이곳은 파리의 발상지인 시테 섬(Ile de la Cite)이고, 이들 오른쪽으로 노틀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이 있었다.
노틀담 대성당을 시작으로 시테 섬을 둘러보기 시작하자 의외로 큰 그 규모에 쟌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않았고, 아드리아나도 마찬가지였다.
뭐, L이 살고있었던 22세기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긴하지만.

***

"파리를 돌아본 건 어땠어?" 얼마 뒤, 많은 상단들이 모여있는 어느 상관의 방에서 L이 쟌에게 물었다.
"의외로 굉장히 컸어요."/"그렇지. 나도 파리에 대해 이야기는 들었지만."
"무작정 부딪쳤으면 큰일날 뻔 했죠." 쟌의 말에 L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보다 파리 시민들이 널 인정안해주었겠지."

생드니 등 파리 주변 지역을 탈환한 쟌은 1429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마침내 파리의 생 토노레 성문까지 접근했으나 잉글랜드군을 물리치며 성문을 열고 맞아주리라는 쟌의 기대와는 달리, 파리 시민들은 쟌을 여자의 모습을 한 괴물, 마녀, 창녀, 탕녀로 욕하면서 입성을 거부했고, 오히려 잉글랜드군과 부르고뉴군과 합류하고 말았다. 결국 전투가 벌어지고 쟌다르크는 허벅지에 화살을 맞으면서도 지휘를 멈추지 않았지만 공성전이 조금씩 장기화될 듯하자 불과 이틀만에 냉랭해진 왕실의 지원 부족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파리 공략의 실패는 쟌이 이전의 갈등과 함께 샤를 7세와 갈라지고 몰락하게되는 시발점이었다.

그에 비해 이렇게 쉽게 파리에 들어와서 시테 섬을 둘러보기라도 한 것이 쟌에게는 놀라웠다.
"분명히 인정안해줬겠지요. 그런데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래보여?"/"네, 오를레앙 건과 관계있나요?"
"있다면 있을 수 있지. 이제 상단 일은 익숙해졌어?"
"그럼요. 아랍의 숫자는 의외로 익히는 건 쉬웠지만, 복식부기는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라틴어는 아직...."
"라틴어는 천천히 배워도 되. 나도 어려워하는 것중의 하나가 라틴어니까.
하지만 우리 상단 사람들이 쟌을 매우 칭찬하던걸. 피난민 아이들을 돌보는 것 외에도 열심히 배우고 일한다고." 이에 쟌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말했다.
"여러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쟌.
1366년경에 이미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등장하고있었고, 이어서 복식부기가 등장했으며 곧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럼 이제 파리를 방문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잠시 상황을 봐야겠지. 내가 지금 걱정하는 건 로이야크 원수니까."
"로이야크 원수요? 도팽 전하가 아니라?"
"부르고뉴에 비해 시농 성의 움직임이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고있기 때문이야."
"...역시 돈인가요?" L의 이 말에 쟌의 눈이 반짝였다.
"맞았어. 전쟁은 보통 때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지. 그래서 시농도 부르고뉴 못지않게 전전긍긍하는 거고, 부르고뉴가 잉글랜드를 끌어들인 것도 어느 부분에서 이해는 되.
이대로라면 시농 성이 지원하는 건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거야. 도팽의 위광으로 시농 성과 그 주변에서 세금을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프랑스 전체로 보면 트루아 조약이 방해가 되겠지요." 이번에는 L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느새 쟌과 L이 있던 방은 문이 단단히 닫힌 채 아드리아나와 크리스티안이 같이 모여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있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죠?" 쟌의 질문.
"먼저 하나씩 정리해볼까. 먼저 상단에게도 알렸나?"
"네, 상단은 이 소식을 듣자 오늘 이익을 전부 정산하면 바로 우리와 함께 이동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좋아. 부르고뉴파와 잉글랜드군이 오를레앙을 우회해 시농으로 몰려오면 발칵 뒤집히겠지. 그걸 이용하는 거야."
"만약 공격군이 소수라면 오히려 정찰을 피하기가 더 쉽습니다. 시농 성이 아무리 요새화가 잘되어 있다고 해도 식량 비축이나 출입 등으로 인해 아군이 바짝 접근하기 전에는 방어태세에 돌입하지 않을테니, 상당한 기습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네, 동시에 병력 출진과 합류 시점에 맞춰 시농 성의 방심을 이끌어 내는 교란 작전이 필요할 겁니다.”
"아직 공격 자체가 개시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만큼 공격군의 기동은 은밀하게, 매우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겁니다. 충분히 훈련받은 정예병들이 주축이 돼야지요. 당연히 사석포를 비롯해 행군 속도를 늦출 위험이 있는 장비들은 가져가기 어렵습니다."
"만일 이러고도 기동이 늦어 일격에 시농 성을 점령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후퇴해야 합니다. 사실상 완벽한 기습이 전제되어야하지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행군을 하면, 정작 도착했을 때는 병사들이 쉽게 지쳐서 싸우지 못할텐데요. 게다가 사석포를 비롯한 공성 병기조차 가져가지 못한다면…"”
"그 말대로지. 우리와 부르고뉴 군이 도착한 걸 보고 적들이 바로 무너져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니까."
"지금 급속 행군을 허용하면 상당한 비전투 손실을 야기할 거야. 게다가 잘못하면 저쪽 사기만 올려주는 꼴이 될 수 있어."
"그럼 지금 시농 성에 분열 공작을 시도하는 건 어떨까요?"
"이간계(離間計)를?"
"네, 분명 이번 오를레앙 전투의 패배 이후, 시농 성 내부에서 딴 생각을 하는 놈들이 있을 겁니다. 도팽의 과도한 처벌에 불만을 품거나, 어차피 패배가 확정적이라고 믿거나 하는 놈들 말이죠.
그런 놈들을 잘 설득하면 성문을 열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드리아나의 말에 모인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랬다.
샤를 도팽이 아무리 도팽이어도 모두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분명 원수에 대한 처벌 과정이나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테고, 이미 아르마냐크 파는 지는 해라고 판단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런 놈을 잘 충동질해서 문을 열어젖히게 만들면 될 거 아닌가?
자기 목숨과 재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들 이기적인 사람들은 세상에 차고 넘치니까.

그렇다면 신神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육신을 가질까요?
신神이 그럴 리 없습니다. 땅은? 신神이 그럴 리 없습니다.
명성은? 신神이 그럴 리 없습니다. 그것은 지능, 지식, 올바른 이성입니다.
신神의 참된 본성은 그래서 이것들 말고 다른 어디서도 찾지못합니다.
-담화록(Discourses), 에피테토스(Epictetus, c, 55~ c.135)

신神은 악惡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神은 전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신神은 할 수 있지만 하지않고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神은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神은 능력도 있고 없애려 하기하는가? 그렇다면 악惡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신神은 능력도 없고 없애려 하지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를 신神이라 부르나?
-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 271)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is arguably the most unpleasant character in all fiction: jealous and proud of it; a petty, unjust, unforgiving control-freak; a vindictive, bloodthirsty ethnic cleanser; a misogynistic, homophobic, racist, infanticidal, genocidal, filicidal, pestilential, megalomaniacal, sadomasochistic, capriciously malevolent bully.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03.26- )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8화. 운명(1).

파리- 투르의 어느 곳.
다음 날, 또네르 용병단은 상단과 함께 파리를 떠나 투르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행군 속도가 달랐는데, 보통 때에는 느긋하게 움직였지만 지금은 급속에 준하는 속도로 움직이고있다는 것이 달랐다.

"이번에는 정치적인 이유인가요?" 그 와중에 둘이서만 있게되자 쟌은 L에게 물었고, L도 딱히 부정하지않았다.
"응, 마지막을 놓치면 안되지. 에전에 투르에 간 적이 있던가?"
"상단으로서 투르에 간 적은 있지만 시농 성으로 향하지는 않았지요. 만약 예전의 저라면 바로 왕세자 전하를 만나러 갔을 거에요."
"그렇겠지. 하지만 아무리 능력과 인격이 별개인 사람들이 많지만.
비록 오를레앙을 로이야크 원수가 사수 중이지만, 이제 잉글랜드 군과 함께 시농 성으로 몰려오겠지."
"만약 왕세자 전하가 물러나도 프랑스가 해방될까요?"
"해방될거야. 조금 다르겠지만." L의 말에 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잉글랜드의 요크 공작 일행과도 만나겠군요."
"운이 좋다면. 하지만 이건 그들도 우리만큼 놓치고싶지않을 거야."
"왕세자 전하는 어떻게 될까요?"
"이건 내 생각이지만 런던탑으로 끌려가지않을까? 만약 생포하게된다면, 이지만."
"Tour de Londres.... 불쌍하면서도 불쌍하지않네요."

...

그 즈음, 요크 공작과 로드 아델레이드 일행도 서둘러 투르로 향하고있었다.

"이런 속도라면 곧 투르로 향하는 중인 본대와 합류할 겁니다."
"운이 좋으면 썬더 용병단도 만날 수 있겠지."
"기대하시고있는 것 같은데요."
"자네도 마찬가지아닌가. 그 용병단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특이했으니까."
"그렇죠. 그래서 저도 시농 성에서 만나는게 기대가 됩니다."
"만약 만나게 되면 그 용병단이나 우리들이나 서로 인연이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지. 게다가 그들은 "성녀(聖女)"도 있고."
"그건 양날의 칼이죠. 도움이 되는 때보다 안되는 때가 많을 겁니다."
"자연히 주목을 끌 수 밖에 없지. 그래서 조용하게 움직이는 거야. 그게 그들의 장점이며.... 단점이기도 하지."
"아마 그쪽도 그걸 알고있을 겁니다."
"그러고보니 프란체스코 스포르차(Francesco Sforza, 1401.07.23 - 1466.03.08) 이야기는 들었겠지?"
"아버지가 사망하자, 처음에는 나폴리군, 교황 마르티노 5세 그리고 밀라노 공작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와 싸우면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몇몇 성공을 거둔 후, 모르타라 성에서 사실상 죄수처럼 보내지는 불명예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루카 원정을 이끈 후, 지위를 회복했다고 들었죠."
"만약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한다면 L과 잘 맞을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이죠." 이 말에 요크 공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

1429년 7- 8월.
프랑스, 투르의 시농 성.
성을 포위한 부르고뉴 군과 잉글랜드 군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샤를 도팽은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긴장해있었고, 다른 귀족들도 각기 반응은 달랐지만, 어쨌건 모두 두려워하고있었다.

“빌어먹을....” 그런 와중에 샤를 도팽은 번개가 그려진 깃발 하나를 보게되었다.
"....저 깃발이 왜 저기있는 거야?"
"아무래도 용병단이니 승자에게 붙은 거겠지요."
"부르고뉴와 잉글랜드 군으로도 힘든데 저들까지라...." 샤를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쉬지않고 움직였을 텐데 저 정도의 군율을 갖추고 있다니....”
“아직 저들에게는 공성 병기가 없습니다. 사다리도 가져오지 않은 듯하니 그냥 버티는 게…….”
“불가능합니다.” 다른 귀족이 말을 끊었다.
“다른 건 몰라도,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현재 식량의 비축이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오를레앙이 함락되지않았다는 소식에 시농 성에 있던 귀족들은 질겁했다.
그러나 샤를 도팽이 자기 영지로 도망치려는 자들을 베어버리겠다는 식으로 강경하게 나은 탓에, 아르마냐크 파 귀족들은 차선책으로 시농 성에 부하들을 불러 모았고, 용병들을 추가로 고용했다.
자기 목숨만은 지켜보려는 알량한 시도였다.
게다가 주변 농민들에게서 걷은 세금으로 식량 창고를 채운 후 최대한 버틴다는 것이 이들이 세운 기본 계획이었는데…. 운이 없었는지, 아니면 사보타주가 있었는지, 성의 식량 창고가 원인모를 화재로 인해 전소되고말았다.
그리고 방화범은 잡히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더 있었다면야 손해 분을 벌충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며칠 뒤에 정찰대가 부르고뉴 군과 잉글랜드 군의 출정을 알려왔고, 그로부터 며칠도 지나지 않아 1천 명의 선발대가 시농 성에 도착한 것이었다.

“남은 식량은 기껏해야 한 달. 대부분의 식량은…… 저 바깥에 있습니다.”
“저들이 써먹은 방법을 그대로 되갚아 주면 어떻겠습니까? 저들이 공성을 할 때 기병대를 내보내서 식량 창고에 불을 놓으면…….”
“불가능합니다. 저놈들을 보십시오. 어딜 봐서 공성을 하려는 모습입니까? 저놈들은 공성추도, 사다리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그냥 버티려는 겁니다! 저희 모두가 굶어 죽거나, 굶어 죽을 위기에 빠질 때까지!”
“아무 것도 안하고 버티는 것보다 우리를 공격해 체력을 소모하게 만드는 것이 저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걸 모르는 것이오? 이런 멍청한 작자 같으니라고! 일을 한 뒤와 휴식한 뒤에 먹는 밥은 양부터가 차이나는 걸 모른단 말인가?”
“뭐야? 이 개구리 같은 작자가! 우리를 힘들게 하려면 저들도 지친다는 건 알고 하는 말이오? 지금은 여름이오! 이 멍청한 작자야! 저들도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한 거지! 저들도 피를 보고싶지는 않을 테니 차라리 협상을 하는 게 백 번 낫단 말이오!”
“지금 저 모습은 허세에 불과하오! 앞일은 볼 줄도 모르고 겁만 많은 두더지 같은 작자 같으니라고! 대체 무슨 수로 식량을 보급하겠소?”
“방금 들은 것도 잊어버리는 새대가리요? 저들은 우리가 성 안으로 들였어야 하는 식량을 모조리 빼앗았단 말이오!”
“지금 말 다했소? 이런 버러지 같은 작자가! 결투요!”
“하! 바라던 바요! 오늘부로 불쌍한 자네 부인은 미망인이 되겠구려!”
“이런 망할! 전부 닥치시오!”
샤를 도팽이 욕설을 퍼부으면서까지 귀족들의 싸움을 말렸지만, 당장 칼을 뽑아 들어도 이상하지않을 것만 같은 흉흉한 분위기는 쉽사리 가라앉지않았다.
이쯤 되자 샤를 도팽은 오를레앙 건으로 로이야크 원수와 뒤두아 백작을 해임한 걸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최소한 그들이라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생각을 가지고있었을텐데. 게다가 두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이미 이들은 가족과 몇몇 부하들과 함께 시농 성을 떠났다는 것을 알자 샤를 도팽은 더더욱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

시농 성에서 샤를 도팽과 다른 귀족들의 입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아무도 드나들 수 없게 경비가 선 어느 천막에서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실망스럽네요."/"뭐가?"
"왕세자 전하의 반응이요. 좀 더 대범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 상황까지 오면 누구나 절망할 수 밖에 없지."
"그렇게 몰아간 게 누구시더라?"
"도팽에게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 하지만 역시 자기 힘으로 해나가기에 부족했을까..."
옆에 쟌 다르크가 없는 이상, 찌질함을 물리칠 정도의 자신감을 얻기 불가능했겠지. 그리고 쟌 다르크의 힘으로 정식으로 샤를 7세가 되었어도 그 성격으로는 밑의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했을 거다. 루이 11세가 아버지 샤를 7세와 싸우면서 그 성격이 된 것도 이상하지않지.
그때 쟌이 화제를 바꿨다.

"고대 이교도들의 서적을 도서관에서 봤어요. 교회에서 알지도 듣지못한 거지만 그들도 고민을 많이했더군요."
"그렇지.... 하지만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떨어질지는 알 수 없어."
"가급적이면 같이 가면 좋겠지만요."
"천국? 글쎄, 지은 죄가 많아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 너나 견습 사제는 천국에 갈 만하지만 신神이 나까지 구원하실지는 모르겠어."
살짝 쓴 웃음을 지었다.
본가 누님들의 영향도 있어서 신神의 존재는 믿더라도 그 신神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 최소한 제대로 믿는 극소수의 신도들은 존중해주겠는데.

"왜죠?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알아. 고해하고 신神 앞에 죄를 시인하면 구원해준다는 것." 이 말에 쟌은 살짝 희망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시는 건 알아요.
신神께서는 전부 아실 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는지."
다정함과 상냥함이 섞인 쟌의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L이 말을 찾는 동안, 갑자기 또네르 용병단의 병사 한 명이 이들이 있는 막사로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단장님, 시농 성에서 사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부르고뉴와 잉글랜드 군의 높으신 분들이 단장님도 와서 의견도 듣고싶다고 합니다."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29화. 운명(2).

"사절이라..... 들어오라고 해라.”
잠시 뒤, L은 부르고뉴 군과 잉글랜드 군의 높으신 분들이 있는 천막에 들어와서 마련된 자리에 앉았고, 결정권자의 승인이 나자 천막으로 들어온 사신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당신이 사절인가?” 결정권자의 말에 사신이 대답했다.
“그렇긴 하오만… 크흠……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겠소. 포위를 풀어주면 5천 두카트를 주겠소." 성직자 복장을 한 사신 단장은 신음 비슷한 소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베네치아 공화국 화폐로 5천 두카트.
이걸 21세기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5억원 정도지만, 전부 비웃었다.

“웃기는 소리하지말도록. 만약 그 돈이 성 내에 있다면 공성해서 함락시킨 뒤에 약탈하면 되고, 성 내에 없어서 당장 지급하기 힘들다면 차일피일 미루면서 주지않으면 그만일 거라 생각하고있겠지. 가서 샤를에게 전해라. 개소리하지 말고 문 열고 항복하라고."
"1만…… 2만 두카트를 주겠네, 제발 살려주게!"
"밖에 누구 있나?"
"5만! 5만 두카트를..."
"애초에 보증도 없는 약속을 뭘로 믿는단 건가? 다음엔 좀 더 제대로 된 제안을 가져오도록."
"원하는 건 모두 주겠다! 제발……."
L을 포함해 모인 사람 전부 사신 단장을 비웃었다.
그리고 사신 단장은 미식을 즐기는지 성직자치고는 꽤나 살이 쪘고, 필사적으로 발악하는 꼴을 보자니 짐작이 갔다..

"뭐가 아쉬운 거지? 재산? 설마 저 조그만 성 안에 재산을 다 숨기지는 않았을 테고, 성직자라면 다시 모으기도 쉽겠지. 그럼 애첩인가?"
"제발……."
"좀 더 제대로 된 협상안을 들고와라. 한밤중에 성문을 열어줄 테니 재산을 보전해달라든가, 그런 거. 그리고 샤를 놈에게 똑똑히 전해라. 후계자라도 인질로 내놓지 않는 한 그딴 협상이 통할 거란 기대는 개나 주라고."
말 그대로 사신은 내쫓겼다. 그리고 사신이 쫓겨나가자 그제서야 부르고뉴와 잉글랜드 양 군의 수뇌부의 시선은 L에게로 향했다.

"이제 썬더 용병단의 고견을 듣고싶네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신 단장으로 오는 사람이 저럴 정도면 성 내부에서는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겠습니까."
"그렇지."
"사신까지 온 이상, 조금 시간을 더 끄는게 어떻겠습니까?"
"시간을 더 끌어?"
"이쪽에도 공성 장비가 있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니...." L의 설명에 양 군 수뇌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된 거로군요." 잠시 후, 또네르 용병단 단장 막사에서 L의 설명을 전부 들은 아드리아나도 한심한다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쟌도 비슷한 반응이었어."
"당연하죠. 그래서 계획은요?"
"좀 더 기다리기로 확정. 하지만 아드리아나가 해줄 일이 있어."
"뭐죠?"
"여차하면 크리스티안도 데려가. 아주 중요한 거니까.
이쪽도 공성 장비가 있지만 제대로 된 공성 장비가 오는데 시간이 조금 있어. 알다시피 이곳 시농 성은 비엔느 강을 끼고있지. 때문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있지......." L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바로 진지한 표정이 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협상 거부, 란 말에 시농 성은 이미 초상집 분위기였고, 더 큰 문제는, 그 직후에 벌어졌다.

"전하! 전하! 큰일입니다!"
"또 뭔가?"
"포위한 적들에게 증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뭐시라!? 규모는?"
"현재 포위한 적 병력과 거의 같은 규모로 보입니다. 게다가…… 공성추와 사석포같은 공성 병기를 동반하고있습니다!" 이 말에 샤를 도팽은 그대로 옥좌에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Ohhhhh.... Mon Dieu...."

또다른 잔다르크 이야기.
30화. 운명(3).

1429년 8월-
드디어 공성용 대형 석궁과 사석포, 공성추 등을 끌고 온 요크 공작은 껄껄 웃으며 L과 악수를 나눴다.

"뭐, 지금까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만, 자네 혼자라면 좀 외로울 것 같아서 한번 와 봤지!"
"군량은 충분합니까?"
"우리 먹을 건 가져왔네. 자네는 어떤가?"
"저놈들이 성에 밀을 다 들여놓지 못했더군요. 근처 농촌에 군량 창고가 터지도록 저장되어있었습니다."
"하하하!" 요크 공작은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대었다.
"그럼 저놈들은 십중팔구 지금쯤 꽤 지치고 굶주렸겠군?"
"뭐, 아직까지 굶는 수준은 아닌 모양이긴 합니다만."
"그건 봐야 알 일이지. 알겠지만 한 사흘쯤 장난을 쳐 보는 건 어떤가? 공격하는 척했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면 저놈들은 그거에 대응하느라 진이 빠질 걸세."
"차라리 사석포를 쏟아붓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요크 공작은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L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우리가 사석포를 끌고는 왔네만…… 화약이 많이 부족하네. 그렇게 많이 쏠 순 없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하루에 몇 발 정도는 되겠죠?"
"그 정도야 가능하겠지. 저놈들을 귀찮게 해 주라는 말이지?"
"적어도 성벽 보수에 시간을 허비하게 할 정도는 될 겁니다. 성문에 한 열 발 정도만 쏴 줘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하겠죠."
그때, 갑자기 요크 공작이 헛기침을 했다.

"난 자네가 부럽네. 자넨 여러모로 참 대단하거든. 작위만 없을 뿐이지."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정말로 그렇다네."
"……혹시 뭐 부탁하실 거라도 있으십니까?"
"음…… 그래, 좀 어려운 부탁이긴 하지." 요크 공작이 헛기침까지 하는 걸 보자 대충 짐작이 갔다.
"혹시, 날 친구라 불러 줄 수 있겠나?"
"예?" 하지만 요크 공작에게서 나온 말에 도리어 L이 놀랐고, 요크 공작의 말은 계속 되었다.
"난 자네가 마음에 드네. 그래서 자네가 날 친구로 불러 줬으면 좋겠어. 내가 자네를 거울삼아 내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군."
순간 L은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서 요크 공작을 바라봤만, 공작의 눈빛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사실, 생각해 보니 요크 공작이 신경써준 일이 많긴 했다.
그러면서도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순수한 호의인가?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낌새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L은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하지요."

***

한편 시농 성의 샤를 도팽은 입술을 깨물었다.
흑빵 한 덩어리와 순무 몇 조각.
이게 이 안에서 가장 높은 신분인 도팽의 오늘 식사였다.
아침저녁으로 한 덩어리씩 받는 이 흑빵도 귀족에게나 돌아가지, 병사들은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실정이었다.
더욱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저들은 석궁 사거리 밖에 지휘관들과 부대장들을 모아 야외에서 고기를 뜯고, 자신들에게서 강탈한 밀가루로 흰 빵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먹이고있다는 것이었다.
개중에 운이 좋은 병사들은 고기 한두 점 정도는 입에 넣을 수도 있었다.

이게 다 저놈들 때문이다.
후속 부대가 도착한 이후 공성추와 포격을 동반한 공세가 개시되고, 성문에 포탄이 여러 발 직격하면서 성 내에서 불안감이 증대되자, 병사들을 동원해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사로 인해 병사들의 체력이 부족해졌고, 이에 사수들도 갈고리를 걸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들에게 화살을 날릴 기력조차 상실해 버려서, 하는 수 없이 창고를 열어 병사들에게 넉넉히 배식을 해야만 했다.
그래 봤자 딱딱한 빵과 물의 배급량을 늘려 준 것뿐이었지만.

결국 예정보다도 한참 빠른 일주일 째에 비축 식량이 바닥났다.
그 와중에 식량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여러 명의 중간관리자를 참수하고 재산을 몰수했지만, 그렇게 얻은 식량도 성 내에 비정상적으로 몰려 있는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돼지 먹이로나 주던 순무마저 동이 났고, 기사들은 살기 위해 애마를 도살해야 했다.

결국 포위가 한 달째에 이르렀을 때, 조금씩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고기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만든 자, 먹은 자 모두 잡는 족족 처형했지만, 귀족들 중에서도 먹는 자가 발생하는 등 이미 성 내의 기근은 극한에 이르렀다.
여름인 것도 문제였는데 좁아터진 성 내에서는 물조차도 이미 극도로 부족해졌다.

"젠장……."
샤를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순무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을 때, 눈에 뭔가 보였다.
성문이 열리고있었다.

"뭐… 뭐하는 거냐! 막아! 당장 막아라! 성문이 열리고있어!"
샤를은 휘청대면서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나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피골이 상접해 해골 같은 몰골이 된 병사들이 덜덜 떨리는 팔로 자신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는 광경이었다.
"우린…… 우린…… 살고…… 싶소…"
2주간. 아니, 아랫사람들일수록 배급이 일찍 끊겼으니 그보다 더 전부터 배를 곯았던 자들의 반란이었다.
샤를 도팽은 순간 정신이 아뜩해졌다.

...

피골이 상접한 병사들과 농노들이 무기를 내던지고 제발 먹을 걸 베풀어 달라고 애걸하는 꼴은 참…….
안쓰러웠지만, 그 기근을 유발한 당사자로서는 좀 미안한 감정도 들긴 했다.
그리고 부하들의 반란으로 포로로 잡혀 고작 빵 몇 쪼가리에 팔려 부르고뉴 군과 잉글랜드 군 지휘관들 앞에 끌려온 샤를 도팽과 프랑스의 대귀족들을 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적어도 잔 다르크는 본인 몸무게만큼의 금보다도 비싼 몸값에 영국에 넘어가기라도 했지…….’

고작 흑빵 몇 덩어리에 귀족들이 팔아 넘겨진다.
이런 걸 보니 기근이 무섭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번 전장에서 단 한 달 만에 무릎 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습 공격으로 인해 비축된 물자가 없는 데다, 인구가 과포화되었다는 특이한 경우였기에 가능했던 것뿐이다.
덕분에 예비 계획은 쓸모가 없어졌지만.... 그건 그런대로 좋았다.

“어쩌겠나?” 요크 공작이 다가와서 L의 어깨를 툭 쳤다. 이에 L이 요크 공작에게 말했다.
"처형할 겁니까?"
"아니, 런던탑으로 데리고 갈 걸세. 하지만 약탈은 공평하게 할 수 있지않을까?"
"그건 고맙군요."
다행스럽게도 시농 성 안에는 생각보다 금은, 보석류가 많았다.
물론 금과 은은 먹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바보짓이었지만, 아무튼 아르마냐크 파의 본거지였던 만큼 군자금이 많았다. 역사가들의 예상보다 더.
그리고 고맙게도, 그들이 그렇게 모아 둔 금화와 은들은 모조리 부르고뉴파의 주머니로 넘어왔다.
나는 물론이고 요크 공작과 로드 아델레이드도 꽤나 짭짤하게 벌었을 거다.

"공작의 몫은 잊지않을 테니 걱정마십쇼."
"아, 그래 주면 고맙지.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큰 전공을 세우지 못해서 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거든.
일단 아내에게 맡겨 두고 오긴했네만, 농노들이 다 도망가지나 않았을지 걱정이군. 이번에 한탕 제대로 했으니 숨통이 좀 트이겠어. 용병들 임금도 슬슬 밀리던 차였는데."
요크 공작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귀족은 위신 때문에라도 쓰는 돈을 줄일 수가 없고, 돈은 끝없이 나가는데 들어올 데는 한정되어 있으니.
차라리 포로를 잡아 몸값을 뜯어내고 무기를 뺏는 게 괜찮은 수입원이었다.
애초에 이 시대에 전쟁은 사업에 가까웠다.

"아무튼 이번 일은 잘됐네. 자네도 조만간 높으신 분이 되겠어. 만약에 대귀족이 되면 잊지말아주게."
"돌아갈 겁니까?"
"끝나는 대로. 아내도 그립고, 가족들도 걱정되네. 영지도 문제고. 황무지나 되지않았을지…….”
이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부르고뉴 왕국의 깃발이 펄럭이는 시농 성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기나긴 백년전쟁의 끝이었다.

...

"잔." 아드리아나와 쟌과 함께 시농 성 주변을 걸으면서 L은 나직하게 말했다.
"너도 내가 잔혹했다고 생각하니?"
"왜죠……." 이 말에 아드리아나는 몰라도 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멀쩡히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자가 자기에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면 이해하기 어렵겠지.
사실 난 이미 이 세상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지 오래다.
아니, 어쩌면 내재되어 있던 폭력성이 분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논리에 매몰되어 가는 나는 과연 미래지식을 가진 중세인일까, 중세에 떨어진 22세기 사람일까.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묻는다고 해서 내 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용병대에서의 평판조차 호탕하다 정도인데, 말이 호탕하다는 거지 중세에서 그 말은 여자 밝히고 힘세고 사람 잘 패고 기타 등등이다.
당장 잔이 여자라는 걸 아는 극소수의 녀석들도 내 취향 때문에 계집애를 남장시켜서 끌고 다닌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니까.
차라리 내 여자로 인식시키는 게 쟌을 보호하는 데 더 용이했다.

물론 내가 한 짓들을 생각해 보면 잔을 보호하며 손을 대지않는 것을 유치한 위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전장에서 더럽혀지는 건 평민이나 귀족이나 다를 게 없었고, 손대었던 여자들 수는 나도 잘 모른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부외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손을 댔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으니까.
그렇지만 약탈 과정에서의 살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내면에서의 목소리는 속일 수 없었다.
아무리 합리화하고 깨끗한 척 해 봤자, 넌 저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전쟁이 일어났다면 전쟁을 핑계로 한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고도 거리낌이 없었을까?
용병단에서 쫓겨난 다음, 이 세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간혹 난 악몽으로 인해 잠을 설치곤 했다.
아드리아나와 쟌 덕분에 악몽을 꾸는 횟수는 다행히 줄어들었지만.
어쩌면, 그래서 대리만족을 위해 쟌에게 더욱 집착하며, 보호자이자 좋은 스승으로 남고싶어하는 걸지도 모르겠지.

예전에도 그랬지만, 난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위해 슬퍼해주는 사람을 거의 보지못했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본 쟌은 굶어죽어가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직접 물과 빵을 건네주며 난민들을 돕는 것을 보았다.
그 얼굴에는 한 치의 가식도 없는, 성녀(聖女)라는 명칭에 걸맞은 자비심과 동정심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난 쟌에게 묻고 싶었다.
이 중세에서 적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내가 아는 한 유일한 존재에게.
적들의 비참함에 쾌감을 느끼는 게 아닌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껴주는 사람에게.
나는 아직 나일까?
물론 전후사정을 모르는 쟌의 입장에서는 생뚱맞은 질문으로 들리겠지만, 그렇게라도 대답을 들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L의 얼굴을 본 잔은 조용히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라도 하지않았으면, 전쟁이 더 길어졌을 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테니까요."

나도 안다.
쟌이 말한 것은 지금 굶주림을 무기 삼아 적들을 굴복시킨 것이 공성전의 빠른 승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의미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지금껏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 변명하며 저질러 온 죄들에까지 면죄부를 쥐어준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난 분명히 백년전쟁을 수십 년 일찍 끝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살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서 쟌의 말 한마디는 교황이 직접 주는 면죄부보다도 더욱 가치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죠?"
"넌 아직 검이 없지."
판금 갑옷은 전리품 중에 쟌의 체격에 맞을 만한 것을 찾느라 애먹다가 차라리 맞춤형으로 사서 입히는 게 낫겠다 생각하고 포기했지만, 검은 한 자루 구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검이라면 괜찮은 검이 있다.

L이 아드리아나와 함께 쟌을 데려간 곳은 성당이었다.
약탈당하고 파괴된 지 오래였지만, 사제도 신도도 모두 죽거나 도망친 성당의 제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제단 밑을 파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파냈을까, 삽의 끝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나자 그곳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잔 다르크가 원래 역사에서 썼다고 알려진 검.
생트 카트린 드 피에르부아 성당의 검이었다.
미리 준비해 간 손수건으로 한 번 닦아 내자 금방 새것처럼 변했고, 난 내심 미소지었다.
혹시나 해서 와 봤는데, 전승은 사실이었고 이 검을 본 아드리아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못했다.
아드리아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이 검을 쟌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이제부터 이것이 네 검이 될 거야."
쟌은 순간 주저했지만 L이 건넨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

그것은 아주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상 백년전쟁이 부르고뉴파의 승리로 끝내어진 시농 성 전투가 끝난지 얼마안되어 술에 취한 어느 잉글랜드 군인이 거리에서 걷던 평범한 프랑스인을 죽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시농 성이 함락되었고 부르고뉴파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제 곧 잉글랜드로 압송되어 런던탑에 갇힐 운명인 샤를 7세를 동정하는 여론도 있었는데, 이 사건이 백년전쟁 직후부터 형성되고있었던 프랑스의 반反 잉글랜드 감정에 제대로 불을 붙였고,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군은 말썽을 일으킨 병사를 제대로 재판도 하지않고 런던으로 소환해버리자 프랑스인들의 반反 잉글랜드 감정이 격화되면서 프랑스 각지에서 불이 붙었다. 그리고 내심 잉글랜드 군에서 벗어나고싶은 부르고뉴파도 이에 가세해 백년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지 불과 30일도 안되어 일명 프랑스 탈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놀란 잉글랜드 군은 허겁지겁 놀라면서 대응했지만,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일명 프랑스 탈환 전쟁이 끝나는데 5년이 더 걸렸고, 1435- 6년, 잉글랜드 군은 칼레만 제외하고 드디어 프랑스 전역에서 물러났다.
여기에는 부르고뉴파가 주도한 것도 있었지만, 이전부터 알려진 번개용병단의 활약은 부르고뉴파 군대 뿐 아니라 잉글랜드 군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번개용병단 중에서 특히 "성녀(聖女)" 쟌이 맡은 부대의 활약은 번개용병단 내에서도 특히 두드러졌고, 프랑스 탈환 전역 중에 목에 잉글랜드 군이 쏜 화살을 맞아 말에서 떨어진 적도 있지만, 무사히 일어나 응급치료를 받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간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희자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1435년, 프랑스의 파리.
대대로 프랑스의 왕들이 대관미사를 올리는 랭스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Reims)에서 필리프 3세 부르고뉴 공작에서 필리프 7세가 된 선량공 필리프는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번개용병단을 나르본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통치를 맡겨 모두를 놀라게했다.
하지만 이것은 선량공 필리프가 번개용병단을 곁에 두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멀리 보낸 거라는 의견이 강했지만, 실상은 선량공 필리프와 L이 비밀리에 회의를 한 끝에 결정된 것이었다.
사실 필리프는 번개용병단을 자신 곁에 두고싶어했지만, L은 그렇게되면 필리프의 부하들과 다른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않을거라고 했고, 결국 오랜 대화 끝에 필리프도 납득하여 나르본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번개용병단을 보내게되었다.
물론 번개용병단 용병들도 이것을 듣고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L과 아드리아나, 쟌의 설명을 듣고 그제서야 납득했고, 예전부터 자신들을 따라오는 난민들과 상단을 데리고 나르본에 정착한다.
이것이 부르고뉴 왕조 이후의 프랑스를 잇게되는 프로빈키아 후작국과 왕조의 시작이었다.


[참고서적]
프랑스사, 앙드레 모로아
영국사, 앙드레 모로아
중세 유럽의 무술, 속 중세 유럽의 무술, 오사다 류타(長田 龍太), AK Trivia Book 총서
1417년, 근대의 탄생(The swerve : how the world became modern), 스티븐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
스페인 제국사 1469- 1716, 존 H. 엘리엇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6: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양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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